좋은 말씀/-매일 묵상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12)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8. 16. 04:35

사도들은 ‘역사적 예수’나 ‘신앙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았거나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알고 믿은 바는 구체적인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였으니, 이 예수 그리스도는 이들이 믿지 않았을 때에도 이들을 만나셨고 이들이 믿을 수 있게 된 후에도 이들을 만나주신 분이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않던 사도들에 의한 추상도 아니고, 믿은 후의 사도들의 추상도 아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눈이 부활사건에 의하여 떠져서 부활 전에 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던 그분이 누구신가를 말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역사 비평적’ 전제를 갖지 않고 신약성경을 읽어 들어갈 경우에도 이중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 전과 후의 두 종류의 그리스도- 이 산약성경 문서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역사 비평학’의 관점에서 조차도 이러한 분리는 미심쩍은 작업이다.(49)

 

     20세기 초에 제기된 신학적 이슈의 하나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였소. 복음서를 연구한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두 요소가 분명히 구분된다는 거요. 역사적 예수는 말 그대로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한 젊은 유대인 남자를 가리키오. 예수 세미나 그룹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역사적 예수요. 기독교가 이 역사적 예수를 놓치고 지나치게 교리적인 그리스도로 치우쳤다는 비판이오. 교리적인 그리스도, 또는 신앙의 그리스도, 또는 부활 후의 그리스도라는 말은 자연인 예수가 아니라 신앙의 대상으로 신격화된 그리스도를 가리키오. 복음서는 이런 전(前)이해에 근거해서 기록된 것이오.

 

슈바이처 박사는 이 문제를 이미 분명하게 정리했소. 복음서에서 역사적 예수를 찾을 수 없다고 말이오. 바르트는 이 논쟁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돌리고 있소. 초기 그리스도교 증인들에게는 이런 구분이 의미가 없었다는 거요. 역사와 신앙이 하나를 이루었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예수 그리스도 경험이 추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이라는 것이오. 바르트에게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논쟁은 부질없는 것이오. 나도 동의하는 바이오. (2011년 2월4일,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