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설날 밤에!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8. 16. 04:31

    오늘 설날이었소. 재미있게 보내셨소? 나는 아침에 딸들에게서 세배를 받은 뒤 처갓집에 가서 장인 장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처조카들에게서 세배를 받았소. 점심과 저녁을 처갓집에서 먹고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 막 돌아왔소. 점심때는 떡만둣국을 먹었고, 저녁때는 몇몇 나물과 조림을 곁들여서 밥을 먹었소. 이렇게 금년의 설날을 쇠었소.

 

    어렸을 때는 설날이 마냥 흥겨웠었소. 설빔이라고 해서 옷이나 신발을, 아니면 양말이라도 선물로 받았소. 평소에 옷을 사 입는 일이 아주 드믄 시절이라 이런 명절에 받는 새 옷은 어린 우리의 기분을 한껏 고조시켰소. 가까운 친척들을 만나는 기분도 괜찮았소. 내 나이 또래의 사촌이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어른들이 팔씨름을 시켰소. 세뱃돈을 받는 기분이야 말로 설명할 수 없소. 세뱃돈으로 군것질도 하고, 장난감도 샀소. 그때는 화약놀이가 많았소. 대보름까지 불놀이를 많이 하는데, 내 기억에는 이미 설날부터 불놀이를 시작했던 것 같소. 설날은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하다는 사실을 마음껏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소.

 

     이제는 모든 게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소. 나이가 들면서는 모든 게 시들해졌소. 명절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삶이 밋밋해졌소. 모든 게 그렇고 그렇게 보이오. 뭐 특별한 게 없어 보이오. 모든 것이 그렇소. 이런 느낌도 늙어간다는 조짐일지 모르오. 내 딸들이 아이를 낳아 친정집이라고 찾아오면 또 새로운 느낌이 들지도 모르오. 어린아이들보다 더 생명감을 느끼게 해주는 대상이 없을 터이니 말이오. 나보다 나이가 더 든 분들이 손자들을 그렇게 귀여워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거요. 그렇지만 결국 자식과 손자들도 모두 멀어지고 마오. 그들도 나에게는 밋밋한 대상이 되고 말 거요.

 

     내가 보기에 세상이 시들해진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오. 그래야만 하오. 오해는 마시오. 이것은 허무주의도 아니고 냉소주의도 아니오. 이 세상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직관이오. 이미 시편기자들도 그 사실을 말하고 있소. 세상이 바람과 같다고, 풀이나 꽃과 같다고 말이오. 아무리 귀한 것들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마오. 우리는 그런 모든 것들과 헤어져야 하오. 만약 그런 대상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다면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들 거요. 세상이 시들해져야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지 않겠소? 너무 인간적으로 말한 것 같지만, 이것은 사실 영적인 안목이오. 이 세상의 것으로는 우리가 안식을 누릴 수 없다오. 어거스틴의 말처럼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분 안에서만 참된 안식이 가능하오. 도대체 그 하나님이 어떤 존재요? 그가 누구이기에 우리에게 영원히 새로운 존재로 다가오시는 거요? 그대는 그를 어림짐작으로나마 인식할 수 있소? (2011년 2월3일,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