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섣달 그믐날 밤에!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8. 16. 04:27

     오늘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이오. 내일은 새해 첫날이오. 한국식 나이로 오늘밤만 자면 모두 한 살을 더 먹소. 음력 전통에서는 태어나면 무조건 한 살이니까 오늘 태어난 아이들은 하루 만에 두 살이 되는 거요. 어머니 복중에 머문 10달을 계산에 넣으면 이런 계산법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오.

 

오늘은 그믐이오. 그대는 오늘 달을 볼 수 없을 거요. 지금이야 웬만한 시골 동네에도 가로등이 켜 있어서 실감이 나지 않지만 그믐날 밤은 원래 칠흑같이 어둡소. 별빛이나 비치면 모를까 그나마 없으면 지척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요. 지금 우리는 이 어둠을 망각하고 있는 중이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거요? 지금 우리는 어둠을 조금도 참아내지 못하오. 그래서 지혜로운 거요? 그대는 어둔 길을 혼자 걸어보셨소? 

 

    요즘 아이들은 밤에 나가노는 일이 별로 없지만 우리 세대의 아이들은 그게 일상이었소. 저녁밥을 먹은 뒤에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을 불러 모았소. 큰 소리를 외치면 다들 알아서 나왔소. 늦은 시간까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소. 밤하늘의 별도 많이 보았소. 어둠과도 친해졌소. 어둠을 알아야 빛의 고마움도 아는 법이오. 

 

     앞으로 언젠가 우리는 완전한 어둠으로 길을 떠나야 하오. 밤에 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어둠이오. 빠져나올 수 없는 완전한 어둠이오. 이를 완전한 어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상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이 해체되는 순간이기 때문이오. 입체적으로 느끼던 것들도 다 밋밋해지고, 결국 소실점처럼 아득하게 떨어져나가고 마오. 그 순간이 두렵소? 미리 겁먹지 마시오. 그 순간이 오기 전에 한 가지 연습만은 착실히 해 두시오. 어둠과 친해지는 연습이오. 오늘은 섣달 그믐날 밤이니, 그런 연습하기에 딱 안성맞춤인 것 같소. (2011년 2월2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