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가면 벗은 구원 이야기>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8. 15. 06:49

 가천노라 하는 목사님이 <가면 벗은 구원 이야기>(이하 ‘구원’)라는 책을 대장간에서 내셨소. 작년 8월이오. 출간 즉시 나에게 한 권 보내시고, 간단하게라도 평을 해달라고 하셨소. 책을 평하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래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책을 손에 들었소. 가 목사님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게 없소이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오. 대장간은 아주 오래 전 졸저 <믿음으로 본 세상>을 낸 출판사요. 개혁적이고 본질적인 신앙서적을 내는 출판사요.

 

     일단 ‘구원’을 쓰신 가 목사님은 공부를 깊게 하신 분 같소. 인용한 책이나 참고도서의 양이 방대하오. 내용도 전체적으로 충실하오. 지금 내가 본격적으로 서평을 쓰는 게 아니니 그리 아시오. 그냥 책에 대한 인상 평이라고 보면 되오. 책의 내용이나 접근 방식이 매우 진지하다는 게 첫 인상이오. 제목이 말하듯이 한국교회의 왜곡된 구원에 대한 이해를 바로 잡으려는 시도요. 책의 전체 구도도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오. 구원에 대한 오해가 무엇인지를 분석한 뒤에 바른 이해가 무엇인지를 제시하오. 그분이 제시한 답은 삼위일체론적인 것이오. 구원은 죄로부터 ‘떠나고’서 주님과 ‘연합하여’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했소. 오해되거나 왜곡되거나 불충분한 구원에 관해서는 여기서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소. 관심이 있으면 그대가 직접 읽어보시오. 그것도 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소. 떠나는 것만 말해서는 안 되고 연합하고 들어가는 차원까지 말해야 한다는 거요.

 

    노아홍수 사건을 예로 들기도 하오. 이런 대목에서 알레고리의 위험성이 있긴 한데, 그래도 재미있는 접근이오. 노아 사건에서도 떠나는 차원, 연합하는 차원, 들어가는 차원이 있다는 것이오.(95쪽) 이처럼 세 차원의 종합이라야 온전한 구원이라고 하오. 가 목사님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도 세 차원으로 설명되오. 거듭남, 성만찬을 통해서 예수의 삶에 참여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이오. 가 목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초대교회도 이런 세 차원에서 구원을 이루었다고 하오. 이런 온전한 구원이 기독교 역사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희랍 철학, 어거스틴, 루터 신학을 통해서 설명하오. 그런 설명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여기서 다 말하기 힘드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의 삼중적 구조와 삼중적 차원을 말하오. 그것이 모든 잘못된 구원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주창하고 있소.

 

     가 목사님이 제기하는 한국교회의 잘못된 구원관에 대해서는 나도 기본적으로 동의하오. 주님 영접이라는 개인 경험에 안주하거나, 구원을 확신하라는 심리적 차원에 머물고, 교회 권위에 의존하는 것 등에 대해서 말이오. 그것을 분석하고 삼중적 구원의 패러다임을 펼쳐가는 방식도 나름으로 설득력이 있어 보이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구원에 대한 삼중적 접근이 지나칠 정도로 고착화되어서 도식적으로 보이오. 어떤 절대적인 사건에서 떠남, 참여함, 들어감이 도식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지 않겠소? 떠남이 참여이고, 참여함이 들어감이고, 들어감이 떠남이오. 죄를 회개하고 죄로부터 떠나기만 했지 실제 삶의 성화가 없다는 것을 놓고 참여가 부족하니 온전한 구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성화론자들의 그것과 비슷하오. 가 목사님의 노력으로 한국교회의 구원 이해가 어느 정도 교정되기는 하겠지만 결국 비슷한 논쟁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오. 이 책이 구원을 삼중의 차원에서 도식적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결국 구원을 실증적인 어떤 사건으로 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오. 하나님 나라의 신비, 구원의 신비, 생명의 신비가 여전히 어떤 도식 안에 갇혀 있다는 말이오. 마지막으로 가 목사님의 책에서 한 패러그래프를 인용하겠소. (2011년 1월27일, 목)

 

“구원은 한 마디로 죄로부터 건져져서 예수 생명을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단지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천국은 산 사람이 살아서 가는 곳이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구원은 우선 살아서 죽음의 현실인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것이다. 따라서 죄와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새로운 생명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결코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없다.”(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