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인간의 계약은 구약에 있는 것만도 아니요, 신약에 있는 것만도 아니다. 하나님의 계약의 행동 역사는 이 둘의 연계성과 통일성 속에서 완전하다. 동일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말씀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통하여도 말씀하신다. 신학이 경청해야 하고 이에 반응하여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로고스는 두 역사의 연계성과 통일성 속에 있다. 신학이 이 명령을 수행할 때 그것은 자기의 초소를 받아 지키는 것이다. 바울의 놀라운 표현을 사용하면, 신학은 위의ㅡ 사명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예배’(logischer Gottesdienst-logike latreia)를 드려야 할 특수한 과업이 있다. (44)
‘논리적 예배’라는 말이 그대에게는 어떻게 들리시오? 로고스는 원래 말씀이라는 뜻도 있지만 이성이라는 뜻도 있소. 하나님의 말씀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는 뜻이라고 봐도 좋소. 그 이유는 위에서 바르트가 말하듯이 하나님의 계약이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에서 나타나기 때문이오.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에서 말씀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려면 당연히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하오. 신학은 말하자면 ‘논리적인 예배’요. 따라서 신학적이지 않은 영성은 없다고 봐야 하오. 그대가 영적인 사람이 되려고 하면 신학 훈련을 꾸준히 하기 바라오. (2011년 1월28일, 금)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면 벗은 구원 이야기> / 정용섭목사 (0) | 2024.08.15 |
---|---|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11) / 정용섭목사 (0) | 2024.08.15 |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9) / 정용섭목사 (0) | 2024.08.14 |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8) / 정용섭목사 (0) | 2024.08.14 |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7) / 정용섭목사 (0) | 2024.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