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7)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8. 14. 05:24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 속에 돌입해 오셔서 (수용하든 않든) 모든 인간에게 말씀하셨고, 말씀하시며, 말씀하실 말씀이다. 이 말씀은 인간을 향한, 인간을 위한, 인간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하나님의 행위는 침묵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 말씀하시는 행위이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그가 행하시는 바를 행하실 수 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행동을 통하여 그가 말씀하시는 바를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행위가 -그 시발점으로부터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것이 아니라 단순하듯이 그의 말씀 역시 놀랄 만큼 풍요롭게 표현되었으나 단순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투명한 것이 아니라 명백하여 지혜 있는 자나 바보에게나 모두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은 행동하신다. 그는 행동하심으로 말씀하신다. 그의 말씀은 발표된다. 말씀은 실제로는 무시될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는 무시될 수 없다. 우리는 복음의 하나님에 관하여, 이 하나님의 행동과 사역에 대하여 말한다. 하나님의 행동과 사역은 복음에서 언어로 나타난다. 그의 말씀은 신학적인 말들, 논리, 논리체계의 창조적 기초요 생명인 로고스다.(39)

 

     위 글에서 바르트는 말씀을 단순히 문자로만 말하지 않소. 오히려 하나님의 행동(Tun)이라고 말하오. 여기서 바르트가 말씀을 얼마나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하는지 알 수 있소. 말씀을 하나님의 구원 행위, 또는 그의 계시라고 보면 되오. 성경을 문자적인 차원에서만 받아들이는 한국의 근본주의자들이 바르트를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소.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중적으로 이해하오. 사건으로서의 말씀, 기록된 말씀, 선포된 말씀이오. 그가 말씀이라고 말할 때는 단순히 성경 자체만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이오. 위에서 이렇게 말했소. “하나님은 행동하신다. 그는 행동하심으로 말씀하신다.” 그 하나님의 행위가 성서 안에 있소. 말씀은 성서이기도 하고, 그것을 뛰어넘기도 하오. 이 하나님의 행위를 우리가 어떻게 재단하고 논증할 수 있단 말이오. 30센티미터 자로 폭풍의 길이를 재겠다고 나서는 형국과 비슷하오.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기 전까지 우리는 말할 게 하나도 없소. 신학은 바로 행위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그 말씀에 근거해야만 하오. (2011년 1월24일,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