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바르트 신학 이야기(6)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8. 14. 05:20

여기서 의미하는 인간적인 사고와 언어는 저 말씀에 대한 대답으로서 무엇보다도 말씀의 창조행위에 의해서 촉발되며, 실존하고, 현실적이 된다. 이 말씀의 선행이 없이는 본래의 신학, 곧 복음주의 신학이 있을 수 없다. 물론 신학이 저 말씀을 실제로 해석하고 해명하며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다. 신학은 저 말씀의 증인들의 말들을 해석하고, 해명하며, 이해시킨다. 말씀 자체에 대해서는 결코 해석조차 하는 것이 아니다. 저 말씀은 모든 해석에 선행하여 말씀되었고, 수용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선포되었다. 신학이란 위의 사실을 전제하며 위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다.(38)

 

     위의 글은 어떻소? 도대체 바르트가 반복해서 말하는 ‘말씀’이 무엇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시오? 독일어로 말씀은 Wort요. 단어, 낱말이라는 뜻이요.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Wort Gottes)이라는 것이 가능하오? 사람은 말을 하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말이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말씀하지 않소.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말하오.

 

바르트는 위 글에서 신학자들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구분하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해석할 수 없다고 하오. 기껏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만 무언가를 말할 수 있소. 이는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다는 말과 비슷하오. 우리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이들의 말을 통해서만 하나님에 관해서 조금 말할 수 있을 뿐이오. 바르트가 말하는 ‘말씀’론은 마치 하이데거가 말하는 언어존재론과 비슷하오. 인간의 말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론적 원천을 가리키오. 그런 말씀의 깊이가 느껴지시오? (2011년 1월22일,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