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Theologie)이란 단어는 ‘로고스’라는 단어를 포함한다. 신학은 무엇보다 하나님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었고 확정된 ‘말들’(Logia)이요, ‘논리’(Logik)요, ‘논리체계’(Logistik)이다. ‘로고스’는 일단 ‘말씀’(Wort)으로 보아야 한다. 비록 괴테의 파우스트는 이 말씀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말씀이 신학의 자리를 규정하는 요소들 가운데 첫 번째이기는 하나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신학 그 자체는 말이다. 이 말은 인간의 반응이다. 그러나 신학을 신학답게 하는 것은 이 신학이 듣고 응답해야 할 말씀이지 이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말이 아니다. 신학은 자신의 말들에 선행하는 말씀과 더불어 죽고 산다. 신학은 이 말씀에 의하여 창조되고 일깨워지며 도전받는다. 신학이 저 말씀에 응답하는 행동 이상이라고 하든가 그 이하가 되든가, 또는 그 이외의 무엇이 되려고 한다면 그의 인간적인 사고와 언어는 공허할 것이요 무의미할 것이요 하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37)
위 글에서 바르트는 ‘신학’이라는 용어로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을 구별하고 있소. 신학에서 인간의 말이 없어서는 안 되오. 인간의 논리가 필요하오. 그러나 여기서 주도권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소. 신학의 중심은 반응으로 나오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놓여 있다는 뜻이오. 이런 점에서 설교는 사람의 반응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하오.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오. 어떻게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전해야 한다는 뜻이오. 바르트의 이런 신학적인 해명을 정확하게 알아듣기는 쉽지 않소. 하나님의 말씀(Wort Gottes)이 담지하고 있는 엄중한 사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오. (2011년 1월1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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