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이해되어야 할 신학의 ‘자리’는 자기내부로부터 제시된 출발점을 말하며 자신의 대상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연유하는 출발점이다. 신학은 이 출발점으로부터 성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및 실천신학으로 나가야 한다. 이는 신학이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다. 군대식으로 말하면 이것은 신학자가 지켜야 할 초소이다. 신학자는 언제 어떻게 되더라도 대학에서든 지하(카타콤)에서든 이 초소를 반드시 고수해야 한다.(36)
바르트 신학을 가리켜 ‘말씀의 신학’이라고 하오. 신학의 중심을 인간과 문화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오. 그대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거요.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말이오. 이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오. 지금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중심을 놓고 있는 것 같소? 설교 시간에 하나님 말씀이 선포된다고 생각하시오? 천만에 말씀이오. 한국교회는 하나님 말씀에 관심이 없소. 19세기 자유주의신학자들이 관심을 보였던 인간에게 관심이 크오. 한국교회는 자유주의를 거치지도 못한 채 자유주의에 머물러 있소. 말씀의 신학이 무엇인지 맛보 못 본 채 말씀의 신학을 거부하고 있소. 이게 아이러니 아니오? 위 글에서 바르트는 신학자가 지켜야 할 초소가 곧 말씀이라는 뜻으로 말한 거요. 그의 주장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오. 유효한 정도가 아니라 한국교회는 아직 바르트에도 미치지 못하오. 그러니 그 다음 단계는 아예 말할 것도 없소. (2011년 1월18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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