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말씀에 대한 수용이자 응답이기 때문에 신학은 겸손하며 자유로운 학문이다. 첫째로 신학은 겸손하다. 왜냐하면 신학의 모든 논리는 말씀에 대한 인간적인 유비(Analogie)에 불과하며 신학의 모든 빛은 인간적인 반사요, 신학의 모든 소산은 인간적인 재생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신학하는 것은 그 어떤 창조의 행동이 아니라 그것의 창조자와 그것의 창조에 대해서 가능한 성실하게 응답하는 찬송이다. 둘째로 신학은 자유하다. 왜냐하면 신학은 말씀에 의하여 그와 같은 유비, 반성적 숙고 및 재생산, 짧게 말하면 그것의 창조주를 찬송하고, 자유롭게 되고, 그와 같은 찬송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그렇게 하며 그렇게 하도록 작동되는 것이기 때문이다.(37)
바르트의 글을 알아듣기 힘들다는 사실을 위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소. 그의 글이 난해하거나 난삽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영적 경지를 요구하기 때문이오. 바르트는 신학의 성격을 겸손과 자유로 규정했소. 그대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소? 신학은 인간의 이성적 논리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 자체가 주체적인 능력을 소유한 게 아니오. 동양의 가르침이 말하는 불립문자(不立文字)와 비슷하오. 이걸 전제한다면 신학은 겸손할 수밖에 없소. 동시에 그 겸손은 오히려 자유를 가능하게 하오. 그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오. 성령의 사람이 자유하다는 말과 비슷하오. 이런 말을 아무나 하면 우스갯소리가 되오. ‘말씀’의 세계를 아는 사람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소. 그대도 그 세계로 들어가기를 바라오. (2011년 1월2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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