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한몸으로 살아가기 (골 3:12-17)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9. 22. 06:32

해설: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기 전에 사도는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12절)으로서의 그들의 새로운 신분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사도는 세 가지 표현(“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 “거룩한 사람들”, “사랑받는 사람들”)을 사용한다.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관용적 표현이다. 믿는 이들은 새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었다. 신분의 변화는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사도는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서 드러나야 할 중요한 미덕으로서 “동정심”, “친절함”, “겸손함”, “온유함”, “오래 참음” 등을 제시한다. 이 미덕들은 모두 공동체를 전제한다. 

 

사도는 좀 더 구체적으로 권면을 이어간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13절)는 공동체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럴 경우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용납하다“(‘아네코’)는 불편한 사람을 참아주는 소극적 행동을, “용서하다”(‘카리조마이’)는 불편한 사람을 불편하지 않게 대하도록 노력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가리킨다. 누군가를 견디기 힘들 때, 사도는 주님께서 자신들을 견뎌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한다. 하지만 소극적 행동으로 만족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라고 권한다(14절). 용서하는 것만으로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다. 서로를 적극적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공동체는 결속된다. 사랑은 공동체를 묶는 끈이다. 

 

이어서 사도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15절)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 즉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요 14:27)를 가리킨다. 사도는, 그들이 “한몸” 즉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가 이 평화를 누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도는 그들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 안에 충만하게 머물러 있게 해야 한다(16절). 사람들 사이의 이견과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만 가능하다. 한몸으로 모여서,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말을 하든 행동을 하든 항상 “주 예수의 이름으로”(17절) 해야 한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한다”는 말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질문하고 그 답을 따라 행하라는 뜻이다. 모든 선한 것의 기원도, 목적도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묵상: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를 전제로 합니다. 홀로 수도 정진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 사람은 다른 믿는 이들과 한 백성을 이룹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은 그분 안에서 한몸입니다. 우리는 한 지역에서 지역 공동체를 이루어 언약 백성으로 자라갑니다. 한몸으로 모여, 위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옆으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합니다. 그것이 지역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연합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가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이루어 주신 구원의 영적 차원을 현실로 실현해 갑니다. 모두가 변화의 과정 중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출발선에 있고, 어떤 사람은 중간 즈음에 있고, 어떤 사람은 상당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상당한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라 해도 여전히 옛 사람의 습성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사람들이 연합하여 한몸을 이루어 살아가는 데에는 의견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과 분열이 필연적입니다. 

 

사도는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관계했던 교회들 중에 이런 문제로부터 면역된 교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편지에서 “한몸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거듭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도 각 사람의 개인적인 윤리 문제에도 관심을 두었지만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윤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쏟았습니다. 개인적인 차이가 공동체를 허무는 원인이 되지 않게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온유와 겸손과 친절과 인내 같은 미덕을 강조할 뿐 아니라, 용서와 사랑의 미덕을 강조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교회는 한몸을 이룰 수 있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모두가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