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5절의 원문은 “여러분은 죽이십시오”라는 명령으로 시작한다. 3절에서 사도는 “여러분은 이미 죽었다”고 선언했는데, 곧바로 “죽이십시오”라고 명령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옛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다. 믿는 이들은 옛 사람의 죽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은 육신적인 욕망를 따라 행하는 일들을 가리킨다.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은 주로 성적인 부도덕을 의미한다. 사도는 “탐욕”에 대해 경고하면서, 그것은 “우상숭배”와 다름 업다고 말한다. 탐욕이란 땅에 속한 어떤 것을 이런 죄악에 대해서 하나님은 “진노”(6절)로 응답하신다.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꺾음쇠 안에 묶여 있는 이유는 후대의 첨가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이 “전에”(7절) 그런 죄악에 빠져 살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이제”(8절)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이미 죽은 옛 사람에 붙어 있던 악덕은 모두 죽은 가지처럼 잘라 버려야 한다. 죽여주신 분은 하나님의 일이고, 죽은 것을 잘라 버리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일이다.
사도는 옷 갈아 입는 행위를 비유로 사용하여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관계를 설명한다. 옛 사람은 헌옷처럼 벗어 버려야 한다(9절). 헌옷을 벗을 때 오물과 악취를 함께 벗어 버려야 한다. 그것처럼, 옛 사람을 벗었으니, 그것에 붙여 있던 죄악과 악덕을 함께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새 사람을 입는다는 말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10절). 그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일같이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일에는 어떤 차별도 없다(11절). 모든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묵상: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하신 일에 우리가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먼저 길을 열지 않으셨다면, 우리로서는 절대로 그 길을 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다 해 놓으셨으니 우리는 날로 먹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을 매일 걸어가야 하고, 이미 이루어 놓으신 일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도록 해야 합니다. 구원의 길을 걷는 것도,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완성하는 것도, 성령의 인도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성령께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3절과 5절을 연결하여 읽고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례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고 그분과 함께 살아납니다. 그것은 영적인 사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 사건이 육체적인 사건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옛 사람에 속한 욕망이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죽었다!”고 스스로 선언해야 하면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매일 변화 받도록 힘써야 합니다. 변화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만 우리에게 변화를 만들어 내십니다. 새 사람을 입는다는 말은 죄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전에”(8절)라는 말과 “이제”(9절)라는 말을 대조시켜 거듭나기 전과 후를 대조시킵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전에는 그랬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변화는 일상 생활의 구체적인 선택과 판단을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와지는 변화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이 거듭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하지만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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