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1절부터 4절은 헬라어 원문에서는 하나의 문장이다. “그러므로”(1절)는 고백에서 권면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다. 앞에서 사도는 자신의 믿음과 생사관에 대해 고백했다. 이제는 그 고백에 근거하여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을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 이 있거든”이라는 말은 가정법이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혹은 “사정이 이렇다면”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다섯 가지의 선물을 열거한다.
첫째, “격려”는 앞에서 언급한 “담대함”의 원천을 가리킨다(1:28).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 격려 때문에 죽음의 위협에도 짓눌리지 않는다. 둘째, “사랑의 위로”는 “사랑을 통해 경험한 위로”를 말한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만큼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 셋째, “성령의 교제”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가리킨다. 믿는 이들에게는 성령이 내주하시고 역사하신다. 넷째, “동정심”으로 번역된 ‘스프랑크논’은 “긍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두 단어 모두 마음으로 피를 흘리는 것처럼 공감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신다. 다섯째, “자비”는 ‘오이크티르모스’의 번역인데, 이것도 역시 “함께 아파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이 다섯 가지는 믿음 안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들 중 중요한 것들만 열거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입었는지를 상기시킨다. 값없이 큰 은혜를 입었다면 그 은혜에 대해 보답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도는 그 보답으로 “같은 생각을 품으라”고 권면한다. 2절부터 4절까지의 주문장은 “같은 생각을 품어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해 주십시오”다. 이 문장에 네 개의 분사구가 이어진다. 같은 생각을 품기 위해서 다섯 가지 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첫째, “같은 사랑을 가지라”(2절)고 말한다. “같은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둔 사랑을 가리킨다. 둘째 “뜻을 합하여”와 셋째 “한 마음이 되어서”는 의미가 중첩된다. 넷째,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3절)고 말한다. 다섯째,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한다. 여섯째,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라”(4절)고 말한다.
이렇게 노력할 때 모두는 같은 생각을 품을 수 있다. 그것은 “강요된 일치”가 아니라 “자발적 하나됨”이다. 모든 교인들이 바라고 소망하고 노력하는 방향이 일치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권면한 이유는 빌립보 교회가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묵상:
기독교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은혜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사도는 편지를 쓸 때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구원 사건에 대해 설명합니다. 하나님에게 등진 우리의 실존과 운명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그 이유가 죄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로 인해 죄의 힘에 노예 되어 살다가 죄에 대한 영원한 저주를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이어서 그는 그 참담한 운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영광을 얻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런 다음 사도는, 구원 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구원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도는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오해하여, 사도가 행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도는 구원의 원리를 설명한 다음에는 언제나 실천에 대해 구체적으로 권면을 합니다. 다만, 그것을 “새로운 율법”(구원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하지 않고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제시합니다. 앞에서 그는 “여러분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1:27)라고 권했는데, “합당하다”는 말은 자신이 받은 변화 혹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2장의 첫 문장에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은혜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우리는 아무런 공로 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은혜를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은혜가 크면 클수록 그 은혜에 보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당신들이 정말 구원을 경험했고 하나님이 주시는 여러가지 은혜를 누리고 있다면, 삶으로 그 은혜에 응답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한다면,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높이고 섬기어 하나됨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분열을 겪는다는 말은 받은 은혜를 망각했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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