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비우고 낮추는 마음 (빌 2:5-8)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8. 28. 06:15

해설:

5절은 1-4절과 6-11절을 잇는 문장이다. 앞에서 사도는 서로를 낫게 여기고 섬겨 하나가 되라고 권면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사도는 2절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으십시오”에서 사용된 동사 ‘프로네오’를 5절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에서도 사용한다. 2절을 달리 번역하면 “여러분은 같은 것을 생각하십시오”가 되는데, 그들이 품어야 할 “같은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6-11절에 나오는 “그리스도 찬가”의 기원에 대해서 학자들은 오래도록 논쟁을 벌여 왔다. 바울 당시 교회에서 불려진 찬송가 가사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바울 자신이 쓴 시편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기원이 어떠했든, 바울의 신앙 고백을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시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6-8절까지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 말하고, 9-11절까지는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행하신 일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6절)라는 번역보다는 개역개정의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라는 번역이 더 낫다. 당시에 “삼위일체” 교리와 신학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사도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과 신성을 공유한다고 믿었다.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우크 하그파르몬 헤게싸토 토 에이나이 이싸 데오)는 여러가지로 번역될 수 있는 난해한 표현이다. 개역개정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라고 번역했다. 본문의 맥락을 감안하면 “하나님과의 동등한 지위를 누릴 것(즐길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라고 번역할 수 있다. 신성의 자리를 누릴 것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그 자리를 떠나실 수 있었다.

 

자기를 비웠다는 말(7절)은 신성의 자리를 떠나셨다는 뜻이다. 이 시편을 ‘케노시스 기독론’이라고 부르는데, “비우다”에 해당하는 ‘케노오‘에서 나온 표현이다. 이것은 신성을 비웠다는 뜻이 아니라 신성의 위치를 떠났다는 뜻이다. “종의 모습”(종의 모르페)은 앞에 나오는 “하나님의 본체”(하나님의 모르페)에 대응하는 표현이다. 헬라어 ‘모르페’는 주로 “형상” 혹은 “모습”으로 번역되지만, “본성” 혹은 “지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지위를 스스로 떠나신 예수님은 종의 지위로 낮아지셨다. 성육신 사건을 통해 인간이 됨으로 그분은 종의 지위로 낮아지셨다.  

 

예수님이 시작한 신성의 자리로부터의 하향성은 바닥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분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는데, 그 죽음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이었다(8절).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죽음이었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저주 받은 죽음으로 여겼다(신 21:23).  

 

묵상:

2절에서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같은 것“을 생각하라고 권면한 다음, 5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생각하라고 부연합니다. 그 마음을 품고 살 때 믿음의 공동체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감동적인 시편으로 설명합니다. 그분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당신에게 주어진 신성의 자리를 누릴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비우고 낮추시는 마음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모르페”를 버리고 “종의 모르페”를 택하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유대인들이 저주로 여겼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인류를 죄와 영원한 저주의 운명으로부터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시편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고난의 종의 노래”(52:13-53:12)를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예언자 이사야가 예언한 고난의 종이 바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셨습니다. 또한 이 시편은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세족 이야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를 마치신 후,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으시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신 후 제자들의 발을 씼어 주십니다. 당시에 손님의 발을 씻는 것은 종들이 하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종의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모두를 씻기신 다음, 예수님은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요 13:14)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이며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입니다. 그 마음과 자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은혜를 기억할 때 생겨납니다. 그 마음과 자세가 우리 안에서 생겨날 때,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비워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고는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됨을 이룰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