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유다의 모든 성읍들이 앗시리아의 수중에 들어가고 예루살렘만 남은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린다. 악성 종기 즉 피부암 종류였을 것이다(21절).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을 찾아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니 신변을 정리하고 죽음을 기다리라고 전한다(1절).
이 말을 듣고 히스기야는 ‘면벽기도’를 올린다(2절).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아뢰면서 죽을 병에서 구원해 달라고 통곡하며 간청한다(3절). 뒤에 이어지는 기도문을 보면, 히스기야는 “제비처럼 학처럼 애타게 소리 지르고, 비둘기처럼 구슬피 울었”고 “눈이 멀도록 하늘을 우러러보았다”(14절)고 말한다.
그 애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고(5절) 예루살렘을 앗시리아 왕의 공격으로부터 구해 주겠다고(6절) 이사야게 말씀하신다. 그 약속에 대한 증거로서 아하스 왕이 만든 해시계에 비친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겠다고 하신다(7-8절). 시간이 되돌려진 것이다.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전해 주면서 이사야는 그에게 무화과 빵을 가져다가 종기에 붙이라고 일러준다(21절).
히스기야 왕은 죽을 병으로부터 회복된 후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10-20절). 그는 한 참 나이에 죽을 병에 걸린 것으로 인해 절망했다(10-12절). 그는 “사자가 나의 뼈를 바수어 먹기라도 하듯”(13절) 극한의 고통을 겪었다. 그로 인해 그는 제비처럼, 학처럼 슬피 울며 하나님께 기도했다(14절). 그는 지금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기 위해 힘썼고 말씀 드리면서, 만일 이 죽을 병에서 살려 주시면 더욱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한다(16-19절).
자비로운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를 회복시켜 주셨다. 히스기야는 사는 날 동안 주님을 찬양하겠다고 약속한다(20절).
묵상: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어떤 원리 혹은 에너지가 아닙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나 영매들이 부리는 잡신처럼 변덕과 심술을 부리는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드러난 것처럼 사랑과 정의가 충만하신 ‘인격’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뜻과 계획을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 독재자가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 안에서 일을 만들어 가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뜻을 세우시고 이루어 가시지만 우리의 작은 한숨과 신음을 들으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때로 세워 두신 뜻을 바꾸기도 하십니다. 히스기야 임금이 드린 절통한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바꾸신 것처럼,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 하십니다. 그런 ‘여유’가 있기에 우리는 그분의 뜻을 알면서도 때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분께 아뢰고 구합니다. 때로 너무나 간절하기에 눈물로, 통곡으로 기도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대로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혹은 기도에 쏟는 열정과 헌신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몸을 불살라 바치며 간구해도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면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응답하실지 마실지는 우리의 믿음이나 열심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간구에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말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어떻게 행하시든,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그분은 우리 각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것을 믿기에 우리는 최선의 것을 구하지만 모든 것을 주님의 선하심에 맡깁니다. 진실로 믿고 구했다면, 어떤 응답을 주시든 가장 좋은 것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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