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랍사게의 말을 사절단으로부터 전해 들은 히스기야 왕은 울분을 참지 못하여 옷을 찢고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는 한 편(1절), 사신들을 이사야에게 파견한다(2절). 그는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음을 알리면서 유다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한다(3-4절).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었으며 그 일에 대해 곧 징계하실 것이라고 답을 준다(5-7절).
그러는 사이에 랍사게는 립나와 전쟁을 하고 있는 산헤립 왕을 돕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물러간다(8절). 그 때 산헤립 왕은 에티오피아 왕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출전했다는 소문을 듣는다(9절). 산헤립 왕은 에티오피아와 유다가 연합하여 공격할 것을 예상하고 히스기야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다시금 심리전을 펼친다. 한번에 두 나라와 전쟁을 하다가는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앗시리아를 맞서 자신의 민족을 지켜 준 신이 없었다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그들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그러니 항복하라고 회유한다(10-13절).
이 편지를 받은 히스기야는 성전으로 올라가 주님 앞에 그 편지를 펴 놓고(14절) 다른 민족의 신들은 우상일 뿐이지만 주님을 살아계신 분이시니 앗시리아의 위협으로부터 구해 달라고 기도한다(15-20절).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어셨다는 사실을 알고(21절)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앗시리아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알린다(22-35절).
얼마 후, 앗시리아 군 진영에서 하루 밤 사이에 십팔만 오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36절). 자중지란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에티오피아 군에게 습격 당했을 수도 있다. 혹은 어떤 초자연적인 사건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어떤 일이 일어났든,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기에 성서 저자는 “주님의 천사가 …… 쳐죽였다”고 묘사했다.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타격을 입은 산헤립은 정복 전쟁을 포기하고 니느웨 도성으로 돌아간다(37절).
상심에 빠져 있던 그는 어느 날 그가 섬기던 니스록의 신전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의 두 아들이 그를 암살하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한다(38절). 그의 다른 아들 엣살하돈이 왕위를 이어받지만, 이 일로 인해 앗시리아는 급전직하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묵상:
37장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한편으로 히스기야 왕의 낙심과 두려움을 보고 다른 한편으로 랍사게와 산헤립의 오만과 교만을 봅니다.
앗시리아 군대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몸소 성전에 나아가 기도하기도 했고,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의 뜻을 묻기도 했습니다. 이사야는 그에게 유다를 지켜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그의 불안과 두려움을 완전히 잠재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부여잡고 그 불안의 나날을 견뎌 냅니다.
히스기야 왕과 예루살렘 주민들을 흔들기 위해서 산헤립이 한 말(10-13절)은 그가 얼마나 오만해져 있었는지를 보게 해줍니다. 산헤립은 정복 전쟁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가 자랑하는 대로 그의 공격을 받고 살아남은 민족은 아직 없었습니다. 그 어떤 신도 그들의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하늘끝까지 교만해지게 만든 원인이었습니다. 그 교만의 끝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만났습니다. 그 어느 신도 자신들을 이길 수 없다고 자랑했던 산헤립은 그가 수호신으로 섬기던 니스룩 신전에서 암살 당합니다.
물리적으로 상황이 좋아지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마치 자신이 신이나 된 것처럼 교만해집니다. 반면, 상황이 나빠지면 심하게 낙심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연약한 인간으로서 물리적 환경에 따라 일희일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믿음이란 그러한 마음의 조화에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의 중심을 붙드는 것입니다. 만사형통, 승승장구 한다고 해서 신이나 된 듯이 들레지 않고, 상황이 나쁘다고 해서 세상이 끝난 것처럼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묵묵히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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