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사도는 마지막으로 몇 가지 개인적인 사안들에 대해 당부한다. 두기고(7절)는 바울의 편지를 골로새 교회에 전해 준 사람이다. 사도는 그에 대해 세 가지 표현(“사랑하는 형제”, “신실한 일꾼”, “함께 종된 사람”)을 사용한다. 그것에 “주님 안에서”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사도는 둘 사이의 우정과 연대가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믿음에 근거한 것임을 강조한다. 사도는 그에게, 골로새 교인들에게 자신의 사정을 직접 전해 주어 그들을 안심시켜 줄 소임을 맡겼다(8절).
사도는 오네시모를 두기고에 딸려 보낸다(9절). 오네시모는 골로새 출신의 노예로서 감옥에서 바울 사도를 만나 회심한 사람이다. 사도는 오네시모에 대한 편지를 따로 써서 보냈는데, 그것이 빌레몬서다.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사촌 마가 그리고 유스도라 불리는 예수는 바울과 같이 가택 연금 상태에 있다(10-11절). 이 세 사람이 사도에게는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를 시작한 사람인데(1:7), 지금은 감옥을 드나들며 바울을 돕고 있다. 그는 골로새 교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으며,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 교회를 위해서도 수고를 많이 하고 있다(12-13절). 그의 곁에는 의사 누가와 데마도 있었다(14절).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사람이다. 데마는 나중에 사도 곁을 떠났다(딤후 4:10).
사도는 라오디게아의 교우들에게도 안부를 전한다(15절). 눔바는 자신의 집을 열어 교회 모임 장소로 제공해 준 여성 신도다. 사도는 이 편지를 읽은 다음에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어 읽게 하고,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도 가져다가 읽으라고 권한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보낸 편지는 보존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사도는 아킵보에게, “주님 안에서 받은 직분을 유의하여 완수하라”(17절)는 메시지를 전한다. 빌레몬서에서 사도는 “우리의 사랑하는 동역자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의 전우인 아킵보와 그대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라고 했다. 따라서 빌레몬서에서 아킵보에게 부탁한 일 즉 그의 종 오네시모를 자유인으로 방면하여 다시 자신에게 보내어 동역자로 일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들어 달라는 뜻일 수 있다.
다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도는 친필로 문안 인사를 적는 것으로 편지를 마무리 한다(18절). 그는 자신이 갇혀 있음을 기억하라고 권한다. 복음의 사람으로 사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묵상:
사도는 편지를 마치면서 “내가 갇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18절)라고 씁니다. 앞에서도 그는 자신이 “매인 몸”이라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3절).
사도는 여러가지 면에서 자신을 “결박된 몸”으로 묘사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휘어잡혔다고 고백합니다(고후 5:14).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그는 전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르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롬 1:1). 그는 또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로잡혔다고 말합니다. 그는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고전 9:16)라고 말합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따라 살려다 보니, 그는 “모든 사람의 종”(고전 9:19)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구원 받는 일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했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에 매인 까닭에 그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사도는 육신 상의 안전을 위해 복음 전하는 일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육신 상의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도가 헌금 전하는 일로 예루살렘으로 가려 할 때, 아가보라는 예언자가 와서, 사도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신도들이 그의 예루살렘 행을 만류하자, 사도는 “왜들 이렇게 울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까?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할 것뿐만 아니라, 죽을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행 21:13)라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일신 상의 안전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했습니다.
사도는 가택 연금 상태에 있는 그의 고난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을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 소개합니다. 아리스다고와 마가와 유스도 예수는 그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되었습니다. 두기고와 오네시모, 에바브라와 누가와 데마는 감옥을 드나들며 그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1:24)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사도는 “내가 갇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라는 말로써 골로새 교인들에게 자신과 동역자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기억하고 참여하도록 권면합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을 자초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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