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창세기 1장1절이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조는 단순히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오. 창조 능력은 하나님께만 주어진 능력이지 사람에게는 없소. 예컨대 어떤 과학자가 거의 사람에 가까운 로봇을 만들었다 생각해보시오. 그것은 창조가 아니오. 이미 주어진 어떤 사물에 기술을 통해서 변형을 준 것뿐이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창조는 아니오. 유전공학자들이 줄기세포를 통해서 사람을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것도 창조는 아니오. 이미 사람이라는 종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뿐이오.
창조는 모양과 성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에서 존재하는 것을 생산해내는 능력이오.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가리키오. 무(無)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시오. 우리는 그것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경험할 수는 없소. 이미 이렇게 유(有)의 세계로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오. 무의 차원과 유의 차원은 전혀 다른 거요. 이는 마치 사이버의 세계와 지금 실제 세계와 다른 것과 같소. 보시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만 하고, 산소를 들이마셔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소. 공간을 통해서만 사물을 확인할 수 있소. 그런 것이 전혀 없는 무가 무엇인지는 유를 통해서만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는 우리에게는 경험 불가인 셈이오.
불교의 경전인 반야심경에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말이 있소. 색은 가시적인 세계를, 공은 비어 있는 세계를 가르키오. 우리의 오늘 주제와 연결하면 공은 무이고, 색은 유요. 변화무쌍한 이런 세계가 결국은 없는 것이라는 뜻이오.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오. 일단 있는 건 분명하오. 그러나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고, 있다고 해서 실체가 아니라 다른 것과의 연관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오. 물이 여기에 있소. 물은 색이오. 그러나 물은 증발하오.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비가 되어 내려오오. 물, 수증기, 구름이라는 실체는 변화하고 있을 뿐이오. 그러니 색은 공과 마찬가지오. 이걸 거꾸로 말하면 공즉시색인데, 의미는 똑같소.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곧 있음과 없음을 단지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을 상투적으로 생각하지 마시오. 단순히 세상을 만드셨다는 뜻이 아니오. 창세기 기자는 지금 보이는 세상 그 너머를 생각한 것이오. 이 세상이 존재하기 이전의 시간까지를 거꾸로 돌아본 거요. 거기서 세상을 창조한 분이 하나님이오. 하나님만이 그런 능력이 있으신 분이오. 사도신경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소. 전능이 아니면 창조는 불가능한 거요. 그분만이 전능한 분이오. 전능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오. 인간은 하나님의 전능을 꿈꾸지만 그것은 아예 불가능한 꿈이오. 그런 꿈은 늘 실패했으며, 따라서 백일몽에 불과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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