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수련회의 주제는 ‘창조와 종말’이오. 여름수련회는 좀 편안한 주제로 말씀을 나누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주제는 부담스러울 수 있소. 그래도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이런 주제를 깊이 생각할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정했소.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신학이 창조와 종말을 말할 때 어떤 선입견이 있소. 창조는 진화와 반대되는 개념이고, 종말은 이 역사를 초월하는 개념이라고 말이오. 그렇지 않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설명하려면 우리가 좀 차분히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오. 가능하면 이번 여름에 그런 기회를 잡아보도록 하십시다.
오늘은 창세기 1:1절에 나오는 ‘태초’라는 단어를 간단히 살펴보겠소. 창세기 앞부분은 말 그대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에 대한 보도요. 그 보도의 첫 마디에 ‘태초’가 나오오. 세상의 처음, 또는 세상의 시작이라는 뜻이오. 그 태초는 도대체 어느 때인 거요? 우주물리학자들은 우주의 나이가 130억년 내외라 하오. 대단한 세월이오. 사람의 수명이 보통 80년이고, 인간이라는 종이 시작한지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2백만 년에 불과하오. 인간의 문명은 세월이 훨씬 짧소. 이런데 비해서 130억년은 까마득한 세월이오. 물리학은 우주가 130억 년 전에 빅뱅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하오.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거요. 우주는 시간과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소.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작동되오. 그것이 없으면 이 세상은 구성될 수 없소.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은 무엇이 지배했소? 공간이 작동되기 전에는 무엇이 존재한 거요?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긴 하오.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말은 할 수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을 거요. 우주 공간도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암흑물질로 채워졌다고 하지 않소. 시간이 없는 세상, 공간이 없는 세상을 나는 이해할 수 없소.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존재하셨다는 말이 되오. 그런 상태를 그대는 상상할 수 있소? 오늘은 여기서 끝내기로 하겠소. 나도 정확하게 모르는 이야기를 자꾸 길게 하면 서로가 피곤해질 뿐이오. 그래도 힘을 내 봅시다. 이런 이야기가 당장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오. 창세기 기자가 공연히 ‘태초’를 언급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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