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예루살렘 성전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9. 14. 05:42

      오늘은 수요일이오. 지난 수요일과 마찬가지로 대구샘터교회의 수요 성경공부 모임에서 함께 나눈 공부의 강의 요약안을 여기에 올리오. 최소한 2천3백년 전, 또는 2천 5백년 전에 팔레스틴 지역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을 오늘 우리가 되돌아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아닌가 싶소.  

 

     시편 132편은 예루살렘 성전 봉헌식에서 사용된 기도문이다. 기원전 10세기에 예루살렘 성전을 처음 건축한 사람은 솔로몬 왕이다. 그 성전은 6세기 바벨론에 의해서 함락되었고,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 스룹바벨에 의해서 다시 건축되었는데, 이 성전도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복음서에 나오는 유대의 헤롯왕이 다시 성전을 건축했고,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위용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성전으로 기원후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시편 132편을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이것이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앙이 녹아들면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1) 간구(1-10절)

     본문은 다윗을 위한 기도로 시작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 성전, 다윗, 남유다는 한 묶음으로 보아야 한다. 북이스라엘은 여러 번 왕조가 바뀌었지만 남유다는 다윗 왕조로 통일되어 있었다. 솔로몬이 성전을 처음 건축하긴 했지만 실제적인 건축자는 다윗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시편기자는 다윗이 겸손하다고 말한다. 이 겸손은 정치적이거나 인격적인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것이다. 그는 다른 나라의 왕들과 마찬가지로 처절한 경쟁을 통해서 왕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권모술수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객관적인 사실인지는 모른다. 성서기자들의 판단이 그렇다는 것이다. 다윗은 우여곡절 끝에 ‘언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들여올 수 있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한 뒤에 이 궤를 성전에 봉안했다. 시편기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5,6절에서 거론한 뒤에 여호와를 예배하겠다고 말하고, 다윗 왕조를 지켜달라고 간구한다.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옵소서.”

 

     2) 하나님의 약속(11-18)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부분에서도 시편기자는 역시 다윗 왕조에 대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신학은 신명기사관과 일치된다. “네 자손이 내 언약과 .... 내 증거를 지킬진데 ...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12절) 사실 남유다 왕들도 하나님의 약속과 교훈을 지키지 않을 때가 많았다. 북이스라엘 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다윗 왕조가 끊어지지 않은 이유는 다윗의 영적인 권위에 놓여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씨조선 왕조처럼 말이다.

 

     다윗 왕조에 대한 약속에 뒤이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대한 약속이 이어진다.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라.”(14절) 예루살렘은 모든 것이 풍족한 성이 된다. 제사장들에게 영적 권위가 주어지고, 성도들에게 삶의 환희가 넘친다.(16절)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동일시되고 있다. 끝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이렇게 전한다.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18절)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위 시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의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자리하기 때문에 성전 자체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성전 중심주의와 반성전주의가 대립했다. 예수님은 성전을 허물라고 까지 말씀하셨다. 오늘 그리스도교에서 성전은 믿는 이들의 삶 자체이다. 이 시편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이스라엘의 독특한 성전문화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