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무시당해본 적이 있으시오? 혹은 무시해본 적이 있소? 그런 순간을 인식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소. 사람이 어쩌다가 사람을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수는 있소. 실수는 누구나 하는 법이오. 그런 걸 일일이 시비 걸 수는 없소. 문제는 천성적이라 할 정도로 사람을 무시하는 경우요. 겉으로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오. 겉으로는 아주 친절한 듯이 대하지만 속으로는 상대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거요. 노골적이든지 내면적이든지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는 인간관계를 근본적으로부터 파괴하오.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천성적인지 모르겠소. 아무리 노력해도 그게 해결 안 되는 걸 보면 분명하오. 그래서 신학자들은 죄의 본질을 교만(휘브리스)이라고 말했소. 속된 표현으로는 안하무인이오. 교만, 또는 안하무인은 세계를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태도요. 자기 이외의 다른 이들은 모두 주변인이오. 세상을 모두 대상으로 여기는 거요.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소.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귀로 세상을 듣소. 모든 게 자기로부터 시작되는 거요.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지는 거요. 그러니 교만할 수밖에 없소. 그것이 민족적인 차원에서 작동되면 제국주의가 되는 거요. 로마는 로마의 세계관으로 유럽을 규정했소. 그것이 아닌 것들을 철저하게 파괴했소. 지금 미국은 로마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소. 자신들의 잣대로 세계를 구성하려는 거요. 파키스탄에 들어가서 오사마를 살해할 수 있는 배짱이 바로 그것이오.
내게도 가끔 교만이 꿈틀댈 때가 있소. 그럴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하오. 평생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여전히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는 뜻이니 말이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길을 가는 수밖에 없소. 그 출발은 모든 사람에 대한 존중이오. 모든 사람이라는 말은 특히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오. 존중받을만한 사람은 우리가 저절로 존중하고 있소. 그대도 사람에 대한 존중이 형식으로가 아니라 실질이 되는 날을 향해 한걸음씩 앞으로 나가도록 하시오. 쉽지 않을 거요.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은 거기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소. 그 길을 향해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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