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원당일기(5)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9. 9. 07:17

    앞서 이야기에 이어서 쓰오. 나무를 심으려면 우선 땅을 파야하오. 땅을 파기 전에 장소를 잘 선정해야 할 거요. 그런데 원당 농가 땅은 워낙 나빠서, 사실 나쁘다는 것도 우리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장소를 정하고 말고도 없소. 그냥 보기에 적당한 곳을 정하는 거요. 어쨌든지 한 시간 이상 땀을 흘리면서 겨우 구덩이를 팠소. 화원 주인아저씨의 설명으로는 우선 물을 70% 정도 채운 다음에 나무를 그 안에 넣고 흙을 덮는 거요. 왜 물을 먼저 부어야 하는지는 물어보지 못해서 모르겠소. 너무 뻔한 질문 같았기 때문이오. 나는 물이 붓기 전에 우선 좋은 흙을 깔아야 했소. 그래서 구덩이를 원래보다 더 크게 판 거요.

 

     좋은 흙이 무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그대가 알 거요. 부식토요. 물기도 잘 빠지는 흙이오. 그게 농가 바로 옆 숲에 무진장하게 있소. 그걸 생각하면 기분이 좋소. 그 숲은 작은 계곡으로 되어 있소. 양쪽 언덕의 낙엽이 모두 그곳으로 모이오. 매년 쌓인 낙엽이 썩고 썩어서 나무에 좋은 비료가 되어 있소. 그곳에 들어가서 걸으면 양탄자 위를 걷는 것처럼 폭신한 느낌이 드오. 숲은 별로 크지는 않지만 내가 아무리 갖다 써도 남을 정도는 되오. 오늘 양은 대야로 숲의 흙을 열심히 날랐소. 지난 번 묘목을 심을 때는 그냥 삽으로 떠서 가져오느라 수고만 많았지 성과는 별로 없었는데, 대야를 사용하니 노력한 표시가 났소. 7-8번 정도 떠오니 수북했소. 숲의 흙을 구덩이에 넣을 때마다 내가 들어가 살 집을 마련한 것처럼 흐뭇했소. 흙 색깔이 원래 마당에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오. 검은 색이오. 손에 들어붙지도 않소. 마치 고급 밀가루로 만든 식빵을 만지는 느낌이 드오.

 

     적당한 정도로 숲의 흙을 구덩이에 채운 뒤에 물을 충분히 주었소. 이제 모과나무를 구덩이에 묻기만 하면 되오. 나 혼자 들기는 힘들어서 다시 집사람의 도움을 받았소. 나무를 너무 깊게 심어도 안 되고, 너무 얕게 심어도 안 되오. 적당한 깊이로 심어야 하는데, 그 적당한 깊이라는 게 보기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정하기가 쉽지 않소. 그럴 때는 자꾸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소. 나무를 믿고 결정하는 거요. 약간 깊거나 얕아도 자기들이 알아서 살 길을 찾을 거라는 믿음이오. 다 심었소. 잘 자라줘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