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고난주간을 보내며(2)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9. 6. 06:01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그대가 개인적인 신앙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다른 사람에게 설득시키기는 어려울 거요. 이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 교리가 비슷하오. 칭의론만 해도 그렇소. 사람들은 아예 죄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칭의라는 그리스도교 교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소. 종교 경험이라는 게 그렇소. 그게 말로 전달이 된다면 간단하지만 그게 사실은 불가능하오. 억지로 사랑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오. 그래도 그리스도교 교리를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마시오. 끊임없이 그리스도교를 변증하시오. 그 과정을 통해서 그대 스스로의 신앙도 훨씬 단단한 토대를 확보하게 될 것이오.

 

     고난 주간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그리고 십자가와 연관해서 이렇게 질문해보시오. 하나님은 왜 그런 방식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한 것이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실 능력이 있는 분이라면 말씀 한 마디로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지 않겠소? 삼십대 초반의 한 유대인 남자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인류 구원의 길로 제시한다는 것은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아 보이오. 바울이 고전 1:23절에서 그 사실을 지적했소.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이오. 더구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이들은 역사에 많았소. 소크라테스의 의연한 죽음은 예수의 죽음 못지않게 감동적이오. 헬라 신화에 나오는 시지푸스와 프로메테우스는 인류를 위해서 일을 저질렀다가 각각 평생 바위를 산으로 끌어올리거나 간을 독수리에 쪼아 먹히는 징벌을 받소.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는 이런 정도의 수준에서 받아들여질 거요. 그대는 여기에 어떤 대답을 제시하겠소. 이는 예수의 죽음이 무슨 근거로 인류 구원의 유일한 길이냐 하는 질문에 대답하라는 뜻이오.

 

     믿으면 알게 된다는 말로 밀어붙일 수는 없소.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소. 성령을 받으면 해결이 되는 거요? 왜 예수의 죽음이 인류 구원의 길이라는 말이오. 직접적으로 대답할 수 없소. 초기 그리스도교가 그런 인식과 믿음에 도달하게 된 그 길을 추적해야만 하오. 이 문제는 예수의 정체성으로부터 풀어가야 하오. 그게 바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시작하게 된 출발점이기도 하오. 그들의 처음 경험은 예수가 메시아,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이었소.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창조의 완성자이며, 구원자이시오. 우리의 모든 허무한 삶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오. 그가 바로 예수라고 한다면 결국 예수의 죽음은 인류 구원의 길이라는 말이 되는 거요.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인식과 믿음의 근거를 여기서 설명하지 않겠소. 예수의 십자가를 통한 죽음은 예수가 하나님과 하나라는 사실에서 나온 당연한 귀결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