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출석하는 교회는 어느 정도의 크기요? 바람직한 교회의 크기를 계량화하기는 어렵소. 반드시 작은 교회가 좋다거나 큰 교회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소. 어떤 공동체든지 말씀이 선포되고 성만찬이 집행되면 그게 그리스도 교회요.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역할이 있소. 그렇지만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소. 먼저 자립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교회는 목사가 먹고 살 수 있는 다른 수입원이 있거나, 또는 남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영적 경지를 확보한 게 아니라면 건강한 교회로 유지되기가 어렵소. 먹고사는 문제와 가족을 부양하는 문제는 목사의 영성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걸 그대도 인정하실 거요. 대형교회(메가 처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신광은 목사님이 <메카처치 논박>이라는 책을 쓰기도 하셨으니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소. 대형교회의 좋은 점도 있소. 교회가 크면 일단 물량적인 토대가 풍부해지니까 작은 교회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소.
요즘은 약간 다른 차원에서, 즉 현대인의 특성으로 성격 규정이 가능한 차원에서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이 제법 많은 것 같소. 핵심적으로는 두 가지요. 하나는 신앙생활의 익명성이오.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싶은 분들은 대형교회에 나가려고 할 거요. 누가 교회에 왔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교회니까 마음 놓고 예배에 참석하거나 마음 놓고 나가지 않을 수 있소.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교회를 선택하는데 아주 중요한 메리트로 작용하오. 다른 하나는 편리성이오. 대형교회는 여러 가지 종교 편의시설을 골고루 갖추게 마련이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다니는 분들은 탁아나 유아시설이 있는 교회에 나가면 편안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소. 그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성경공부나 동아리 모임에도 참석할 수 있소. 심지어 어떤 교회는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오. 마치 대형마트에 가서 한꺼번에 쇼핑을 하듯이 이왕이면 그런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교회에 나가겠다는 생각을 옆에서 뭐라 할 일은 아니오.
나는 지금 역사의식이 있는 분들에게 약간 다른 말을 하고 싶소. 역사의식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그냥 한국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분들에게 말하는 거요. 아니, 어린아이나 이와 비슷한 문제로 어쩔 수 없는 분들이 아니라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교회를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분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오해는 마시오. 지금처럼 교회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강화되어서는 한국교회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소. 대형교회는 늘어나는데 한국의 전체 개신교인은 줄어들고 있소. 이런 현상이 대한민국 말고는 이 세계에 그 어디에도 없소. 같은 대한민국에 있는 가톨릭교회는 모범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고, 계속해서 부흥하고 있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추세는 속도를 더 낼 것이오. 그대가 한국교회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대형교회보다는 조금 불편한 구석이 있어도 작은 교회를 선택해보시오. 작은 교회라고 모두 좋다는 뜻은 아니오. 대형교회보다 더 고루하고 병들어 있을 수 있소. 대형교회는 공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지만 작은 교회는 그런 안전장치도 없을지 모르오. 그래서 그대에게 무조건 작은 교회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오. 그러나 눈에 띄게 이상한 교회가 아니라면 작은 교회를 선택해보시오. 평신도들의 그런 선택 없이는 한국교회의 갱신과 개혁은 없소. 미래도 없소. 무한경쟁과 복음의 상품화와 영성의 소진, 그리고 전체적인 추락의 길로 내몰릴 수밖에 없소. 우리 자식들에게 그런 교회의 미래를 물려줄 수는 없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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