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특징이 평말과 높임말의 구분에 있다는 사실을 그대도 잘 알고 있을 거요. 웃어른에 대한 예의가 말버릇에 그대로 나타난 거요. 극진 높임말도 있고, 중간 높임말도 있소. 그런 것을 다 가려서 쓰기가 쉽지 않소. 오해되는 경우도 많소. 쓰지 말아야 할 높임말이지만 습관적으로, 또는 인간관계 상 어쩔 수 없이 쓰는 경우도 있소.
젊은 목사 부인들에게서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오. 자기 남편을 아무개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게 습관이 되어서 신학대학교 스승이나 선배 목사를 만난 자리에서도 자기 남편을 가리켜 ‘목사님’이라고 말하는 거요. 교회에서는 자기 남편의 나이가 어려도 나이 든 장로 급 신자들 앞에서 자기 남편을 ‘목사님’이라고 말할 수는 있소. 사실은 그것도 원칙적으로는 옳은 건 아니오. 그냥 아무개 ‘목사’라고 해도 될 거요. 교회의 특별한 문화니까 교회 안에서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렇다 치고 교회 밖에서도 그렇게 호칭하는 것은 큰 결례요.
며칠 전에 어느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었소. 설교 동영상이 나오기 전에 일반 신자 대표의 기도가 있었소. 기도 내용이 세련되어서 배울 게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소. 나도 기회가 되면 365일 기도문을 써볼 생각이오. 대표 기도의 내용 중에 설교할 목사를 위한 기도가 있었소. 두 번의 동영상을 보았는데, 두 번 다 그렇소. 기도하는 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아무개 ‘목사님’과 함께 해주셔서.... 라고 기도했소. 본인은 설교자에 대한 예의로 ‘님’ 자를 붙였겠지만 은혜로운 기도를 따라가던 나는 좀 민망했소. 왜 그런지를 설명해야겠소? 그대는 이미 그 이유를 알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한 마디만 하겠소.
기도는 거기 모인 청중들에게 전하는 종교적 덕담도 아니고 훈계도 아니고 독백도 아니오. 거기에 모인 청중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이고 간구이며 송영이오. 하나님이 주체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목사‘님’이라니, 모양이 우습지 않소? 이런 실수가 있다고 해서 그 기도를 받지 않으실 하나님은 아니겠으나 마땅히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는 지켜야 하는 거요. 앞으로 그대가 대표로 기도할 기회가 있으면 ‘님’ 자를 빼고 이렇게 기도하시오. ‘아무개 목사를 통한 설교말씀이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게 인도해 주옵소서.’ 모든 회중이 존경해마지 않는 목사님을 공개적으로 ‘목사’라고 부르는 것이 한국의 풍토에서는 어색할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하나님이 어색한 것보다는 낫지 않겠소? 더 바람직한 것은 주일공동예배 시에는 사람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 거요. 성가대, 주일학교교사, 사회자, 설교자 등을 거론하는 기도는 개인적으로 드리고 주일예배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도를 드리시오. 자칫하면 예배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을 높이는 자리가 될 수 있소.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 정용섭목사 (0) | 2024.08.22 |
---|---|
정의란 무엇인가 / 정용섭목사 (0) | 2024.08.22 |
종이는 태양이다 / 정용섭목사 (0) | 2024.08.21 |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19) / 정용섭목사 (0) | 2024.08.21 |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18) / 정용섭목사 (0) | 2024.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