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알라딘 주최 문화초대석의 강연회가 있었소. 졸저 <설교란 무엇인가> 출간 기념의 강연회요. 그보다 앞서 14일에는 비슷한 강연회가 홍성사 주관으로 있었소. 14일의 강연회에서는 설교 문제를 중심 주제로 삼았고, 21일의 강연회에서는 인문학적 성서읽기를 중심 주제로 삼았소. 21일의 강연에서 나온 말 중의 하나가 ‘종이는 태양이다’는 것이었소. 늘 하던 이야기인데, 그때 강연회를 계기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오.
지금 내 앞에도 종이가 방 가득히 쌓여 있소. 나를 둘러싼 책들은 모두 종이요. 메모지도 있고, A4 용지도 있소. 이면지로 사용하고 있는 A4 용지를 눈 감고 만져보았소. 어떤 사물을 정확하게 경험하는 데는 시청각만이 아니라 촉각이 중요하오. 시각장애인들은 손 감촉으로만 종이의 종류를 다 가려낼 거요. 한지의 느낌이 가장 좋을 것 같소. A4의 질감은 너무 강하오. 웬만해서 찢어지지도 않소. 매끄럽기도 하고, 자칫하면 손을 베일 수도 있소.
종이라는 저 사물은 어디서 온 거요? 나무를 가공해서 빼낸 펄프가 종이의 원료요. 종이의 원료는 나무라는 말이오. 나무는 태양빛과 탄소와 물의 탄소동화 작용으로 자라오. 태양빛이 없으면 나무는 없소. 결국 태양빛이 여러 과정을 통해서 종이로 변해왔다는 말이 되오. ‘종이는 태양이다.’는 말이 물리적 차원에서도 틀리지 않았소. 여기서 끝나지 않소. 태양이 어디서 왔는지를 더 생각해보시오. 지금도 우주에서는 끊임없이 태양이 생성되고 사라지고 있소. 우주의 먼지구름이 어떤 자극을 받아서 움직이면서 별이 만들어진다고 하오. 태양은 그런 별들 중의 하나요. 그렇다면 종이는 우주의 먼지구름이라는 말도 되오.
그대는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을 거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사물들은 더 근원적인 사태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오.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우리가 확연히 알 수는 없소. 그것이 신비요. 인간들이 과학적으로 그 전체 연결 고리를 조금씩 풀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들과 다를 게 없소. 궁극적인 것은 종말에야 가능할 거요. 그 궁극적이고 종말론적 신비가 바로 하나님이오. 그 신비는 우리에게 어둠으로 경험되기도 하오. 그 어둠의 신비에 영혼을 열어두는 삶의 태도가 바로 영성이오. 그대에게 이런 삶의 영역이 확대되기를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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