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두 개의 사건으로 이뤄졌습니다. 첫번째는 수넴 여인에게 임한 내용입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에 기근이 들 것을 알고 여인에게 7년동안 집을 떠나 블레셋 지역에 내려가 살게 합니다. 그리고 7년 후에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나 7년 동안 비었던 집과 토지를 사용라하려고 하였지만 이미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인은 왕에게 엘리사가 행한 자신의 문제를 호소합니다. 이에 왕은 게하시를 불러서 엘리사의 큰 일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다시 집과 토지와 더불어 7년 동안의 밭의 소출을 돌려줍니다.
두번째 사건은 엘리사가 다메섹에 있을 때 아람 왕 벤하닷이 큰 병이 들어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입니다. 벤하닷이 엘리사가 다메섹에 있다는 말을 듣고 부하 하사엘을 통하여 엘리사를 찾아가서 살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하사엘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는 벤하닷이 살기는 하지만 죽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에 하사엘을 쏘아보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것은 하사살에 이스라엘을 행할 끔찍한 만행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사엘은 부정하지만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뤄집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하사엘이 아람 왕이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왕상 19:15) . 벤하닷은 질병으로 죽지 않았지만 친구이며 동지인 하사엘에 의해 암살로 죽게 됩니다.
두 사건은 보이는 것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말씀합니다. 내가 사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던 여인의 삶은 손해보는것 같았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순종이 주는 복입니다.
반면에 벤하닷과 하사엘에 임한 것처럼 자기 욕망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고, 자기 욕망을 숨기려고 하여도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뤄집니다. 반드시 탐욕은 죄를 낳고 사망에 이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과부와 고아들 같이 사회적 약자를 존중히 여기십니다. 죄악된 세상에서는 가진 자들의 오만이 가득하지만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를 존중히 여깁니다. 더구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향하여 가진 것 가운데 전부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수넴 여인처럼 전적인 헌신과 순종하는 신자를 예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또한 하사엘을 보고 울었던 엘리사는 가롯 유다를 보고 슬퍼하신 예수님을 보게 합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가 차라리 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탐욕을 가진 자의 멸망이 끔찍하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을 그리고 주님께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순종과 탐욕을 죽이는 신앙이 주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온전한 순종과 탐욕을 죽이는 싸움에 최선을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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