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명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씻기는 일상이 되었소. 매일 샤워나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소. 먼지가 많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매일 씻지 않을 수 없소. 광부나 미화원, 또는 자동차 수리공, 행상 같은 분들이 그렇소. 하루 종일 땀을 흘리거나 먼지를 뒤집어썼을 테니 당연히 씻는 게 좋소. 옛날에는 씻고 싶어도 환경이 받쳐주지 않았소. 거의 모든 집에는 샤워나 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소. 여름철은 우물가에서 물을 끼얹기라도 할 수 있었지만 겨울철은 겨우 얼굴과 손, 발을 씻는데 급급했소. 나는 어렸을 때 아버님이 씻은 물을 그대로 받아서 씻었소. 따뜻한 물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오. 요즘이야 샤워시설이 없는 집이 얼마나 되겠소. 비데를 설치한 집도 많소. 또 옛날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오. 옛날에는 신문지나 잡지 같은 폐지를 손으로 비벼 부드럽게 만들어서 뒤를 처리하는 데 사용했소.
땀과 먼지를 씻어내는 거야 위생에도 좋으니 권장할 일이지만, 그것도 정도껏 하는 게 좋지 않을는지. 자기 전에 무조건 샤워를 하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 말해 뭐 하겠소. 전 국민이 샤워나 목욕을 한 번 씩만 줄이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에너지를 크게 줄일 수도 있을 거요. 몽고 유목민이나 시베리아 에스키모, 또는 티베트 오지의 원주민들이 사는 모습을 화면으로 볼 때가 있소. 속사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화면에 나오는 걸로만 보면 그들은 거의 씻지 않고 사는 것 같소. 물론 그들을 우리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소.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살아갈 수도 없소. 그렇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오. 지나치게 청결한 삶의 방식은 자연과의 불일치로 나가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소.
사람의 운명에는 결정적으로 두 번의 씻는 순간이 있소. 하나는 태어나는 순간이오. 어머니 자궁에서 나와 탯줄을 끊은 뒤에 몸을 씻어야 하오. 처음에는 수건으로 양수를 닦아내겠지만 곧 물로 또 씻어야 할 거요. 태아가 언제 쯤 물로 목욕을 하는지는 내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세상에 나올 때 씻는다는 것은 분명하오. 다른 하나는 죽는 순간이오. 장의사들이 시체를 알코올로 깨끗이 닦소. 그것도 일종의 목욕과 같소. 살아있는 동안에 씻는 것은 이 마지막 순간을 위한 연습이 아닐까 하오. 금년 한 해, 적당하게 씻으며 사시오. 언젠가 마지막으로 씻어야 할 순간이 온다는 사실도 기억하시오. (2011년 1월13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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