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바울 시대에 가정을 구성하고 있던 두번째 축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였다. 부부 관계에서 약자인 아내에게 먼저 권면을 준 것처럼,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사도는 약자인 자녀에게 먼저 권면한다. 당시 문화권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였다. 부모들의 부당한 요구와 명령으로 인해 자녀들은 자주 고충을 겪어야 했고 때로 심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알기에 사도는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1절)라고 권면한다.
“주 안에서 순종하십시오”라는 말은 아내들에게 준 말 즉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순종하듯 하십시오”(5:22)와 같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내들은 남편들에 대한 복종의 의무에서 해방된 것처럼, 자녀들도 부모들에 대한 의무적 복종에서 해방되었다. 그것은 가정의 제도를 해체하고 모두가 자기 멋대로 살게 하려는 뜻이 아니다. 가정을 “의무의 공동체”로부터 “사랑의 공동체”로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무적 복종으로부터 해방된 자녀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것처럼 자원하여, 기쁨으로 부모를 위해 “종 노릇” 할 수 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주신 해방의 진정한 이유다. 그래서 사도는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라고 덧붙인다.
여기서 사도는 다섯째 계명을 인용한다(2절).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홉가지 계명은 모두 명령으로 끝나는데 다섯째 계명은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3절)라는 약속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출 20:12절; 신 5:16).
이어서 사도는 부모에게 말길을 돌린다. “아버지 된 이 여러분”(4절)이라고 한 것은 수신자들이 가부장적인 문화권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상황에 적용한다면 “부모 된 이 여러분”이라고 해야 한다. 부모의 부당한 요구와 명령은 자녀들의 마음에 분노와 상처를 쌓게 마련이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잘못하면 대물림 될 수 있다. 또한 상처가 많은 사람은 사회 생활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사도는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가르치십시오”라고 덧붙인다. “가르치십시오”는 “양육하십시오”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주님의 훈련과 훈계”를 배워 익혀야 한다. 믿음의 부모는 자녀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묵상:
인간처럼 오래도록 양육이 필요한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갓 태어난 생명은 육체적으로도 너무나 유약하고 정신적으로도 무방비 상태입니다. 육체적으로 안전하다 할 만한 정도가 되려면 수년 동안의 양육이 필요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기질과 성품이 달라지고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달라지며 운명이 달라집니다.
한 사람의 형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부모입니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는 아버지들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부모 모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어린 생명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입니다. 부모에게 거부 당하고 버림 받으면 세상 전체로부터 거부 당하고 버림 받는 셈이 됩니다. 반면, 부모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자라면 세상 전체가 자신을 환영한다고 느낍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과 행동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부모는 “양부모”입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영원하고 참된 부모인 하늘 아버지를 찾을 때까지 양육할 책임을 부여 받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믿음의 형제 자매”가 됩니다. 자녀를 자기의 소유물처럼 명령하고 부리려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로 존중해야 하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를 함께 배우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함께 자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모든 믿음의 가정은 최소 단위의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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