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경고에 대하여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를 죽여야 한다는 측과 선지자를 살려야 한다는 측입니다. 둘 다 논리가 있습니다. 해가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을 남겨야 하는 이유는 없다는 것과 옳은 말은 쓰더라도 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예레미야를 살려야 한다는 측은 히스기야 왕의 시대를 예를 듭니다. 당시의 미가 선지자의 쓴 말에 히스기야 왕은 겸허이 듣고 벌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 한명의 선지자인 기럇여아림 출신의 우리야입니다. 우리야 역시 같은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여호야김과 고위 공직자들은 우리야를 죽이고자 합니다. 우리야는 애굽으로 피신 하였지만 결국 잡혀와서 죽임을 당하고 평민의 무덤에 묻혔습니다.
두 사이에 있는 예레미야는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도와줌으로 일단 죽임을 피하게 됩니다.
왕 즉 권력이 존재하는 곳에 언제나 선지자는 있습니다. 왕과 선지자는 둘 다 기름부음 받은 자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중요한 직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모든 직분을 성취하실 때까지 이들은 서로 견제하며 나라를 세워 갑니다.
권력이 타락하면 선지자의 말을 듣고자 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건강할 땐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또한 선지자의 말이 타락하면 권력도 타락합니다. 선지자의 말이 능력이 없으면 권력은 자기 입맛대로 행동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해야 합니다. 권력은 부여받은 사명에 충실하고 선지자의 말에 통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미와 아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긴장은 항상 존재합니다. 오늘 교회와 성도가 선지자의 역할과 권력자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바른 복음이 증거되면 나타나는 현상과도 같습니다. 바른 복음을 들으면 교회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뛰쳐 나갑니다. 그러나 알곡은 남습니다. 알곡과 가리지의 구별은 삶의 모습이 일차적이지 않고, 복음에 대한 반응이 우선합니다. 히스기야와 여호야김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긴장 관계속에서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고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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