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15절부터 20절은 “그리스도 찬가”라고 불린다. 사도는 앞(13-14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한 후, “그 아들”에 대해 부연할 필요를 느꼈다. 이 본문은 다른 부분과 뚜렷이 구분되는 시적 형식으로 되어 있고, 전반부(15-17절)와 후반부(18-20절)가 대칭되도록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이 찬가는 당시 교회 예배에서 불려지던 찬송 혹은 신앙고백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더 많은 학자들은 이 찬가를 바울 자신이 쓴 것으로 간주한다.
15절부터 17절은 “창조자 그리스도”를 노래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분(요 1:14)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5절).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고 하셨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라는 말은 “가장 먼저 창조된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창조 이전부터 계신 분”이라는 뜻이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셨다.
“만물”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가 모두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16절). 따라서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17절)한다. “만물보다 먼저 계시다”는 말은 그분이 천지 창조 이전에 계셨던 분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분이 만물 위에 계시다는 뜻일 수도 있다.
18절부터 20절은 “구원자 그리스도”를 노래한다. 사도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하곤 했다. 그 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근원이시며”(18절)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의미다. 그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 이유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그분은 “만물 가운데 으뜸”이 되셨다. 하나님은 “모든 충만함”(19절)을 그분 안에 있게 하셔서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20절) 모든 피조물과 화해를 이루셨다.
여기서도 사도는 앞에서 사용한 세개의 전치사구(“그분 안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하여”)를 사용한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처럼, 구원 사역도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묵상:
기독교의 기원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 중 하나가 사도들과 초기 신도들이 나사렛 청년 예수를 창조주 하나님과 동격으로 믿고 예배한 사건입니다.
탁월한 한 인간을 신으로 섬기는 것은 그리스-로마인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스-로마인들에게는 “신적 인간”(‘테이오스 아네르’)이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비범한 지혜나 행동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을 신적 인간으로 여겨서 숭배하곤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이적을 행하자 그 도시 사람들이 바울을 제우스로, 바나바를 헤르메스로 예배하려 했던 것이 그 예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사고 방식에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이었던 “쉐마”(신 6:4-9)는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 뿐이십니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유일신에 대한 믿음은 다른 수 많은 종교로부터 유대교를 구분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과 하나님은 피조물과 창조주로서 뛰어 넘을 수 없는 거대한 거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사람이라 해도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신이 인간이 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고, 초기 신도들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이방인들이 교회 안에 유입된 것은 적어도 십여 년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이었던 사도들과 초기 신도들은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한 분으로, 모든 존재를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 받은 분으로 믿고 고백했습니다.
그러한 변화는 그들로서는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삼년 동안 같이 먹고 자며 동행했던 인간 예수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으로 고백하고,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고백하고 예배하게 만든 어떤 강력한 사건이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그것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사건입니다. 그 사건을 통해 사도들과 초기 신도들은 나사렛 청년 예수의 숨겨진 정체를 알아보고 그분을 주님으로, 구원자로, 왕으로 섬기게 된 것입니다.
'좋은 말씀 > -사귐의 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의 비밀, 고난의 비밀 (골 1:24-29) / 김영봉목사 (0) | 2024.09.15 |
---|---|
복음은 모자라지 않다.(골 1:21-23) / 김영봉목사 (1) | 2024.09.14 |
땅에서 누리는 하늘 (골 1:9-14) / 김영봉목사 (0) | 2024.09.11 |
우리 신앙의 세 기둥 (골 1:1-8) / 김영봉목사 (0) | 2024.09.10 |
골로새서에 대해 / 김영봉목사 (1) | 2024.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