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고난주간을 보내며(6)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9. 7. 06:35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저녁 때 무덤에 묻히셨소. 최소한의 장례절차도 밟지 못했소. 왜냐하면 금요일 저녁부터는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오. 일단 안식일이 시작되면 시체를 움직이는 일은 금지되오. 그 안식일에 예수님의 시체도 무덤에 갇혀 계신 거요. 죽음의 세계요. 가사(假死)가 아니라 실질적인 죽음이오. 메시아가 우리와 똑같은 죽음에 떨어졌소.

 

죽음을 보통 영원한 안식이라고 말을 하오. 부분적으로 옳기도 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이오. 모든 책임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점에서는 안식이라 할 수 있지만 모든 기쁨과 행복으로부터 단절된다는 점에서는 저주라 할 수 있소. 고통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살고 싶다는 게 인간의 본심이오. 죽음을 참된 안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즐거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 세상의 것들은 결국 우리를 안식하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옳은 말이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슬픔도 함께 겪소. 자식을 얻어서 즐겁기만 한 게 아니라 어려움도 있소. 이 세상의 일은 그 어떤 것도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하오.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부활 사이의 상태가 어떤 것이겠소? 시체가 썩어가고 있는 거요? 몸은 비록 썩어갔지만 영혼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거요? 그것은 아무도 모르오. 몸과 영혼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죽은 뒤에 몸과 영혼이 각각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어찌 알 수 있단 말이오. 예수님이 무덤 속에 계신 사건에 대한 간접적인 해명을 베드로전서 3:19절에서 찾을 수 있소.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벧전 4:6 참조) 초기 그리스도교 문서가 형성되던 시기에 뿌리를 둔 사도신경에도 무덤에 묻히신 주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대목이 나오오. 우리말 사도신경에는 물론 빠졌소. 이런 단서들은 초기 그리스도교가 인류 전체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의미요.

 

      예수님의 죽음과 매장은 인간의 절망이 무엇인지를 말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극복을 가리키오. 우리는 모두 숨을 멈추게 되는 날 매장될 거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미 그 길을 가셨소. 그로 인해서 우리는 무덤 속과 같은 실존을 살면서도 참된 생명을 희망할 수 잇게 되었소. 기쁜 부활절을 맞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