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두 발로 걷는 동물은 ‘호모 에렉투스’(직립인)의 후손인 인간밖에 없소. 침팬지, 고릴라, 원숭이 등은 그저 잠시 흉내만 낼 뿐이오. 사람은 태어나서 보통 한 돌이 되면서 걷기 능력이 생기오. 한 사람의 행동 발달에서 이 순간보다 더 소중한 순간은 없을 거요. 세상을 밑에서만 보다가 위에서 보게 되는 순간이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소.
현대인은 걷기를 귀찮아하오. 웬만하면 차를 타고 다니오. 옛날에는 아이들도 주로 걸어서 학교에 다녔소. 시골에서는 하루에 한 두 시간을 걷는 건 예사였소. 지금은 짧은 거리는 모르지만, 한 시간 이상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없을 거요. 이런 삶의 변화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소. 걷지 않는 습관이 어른이 돼서도 계속 되오. 건강을 위해서 걸어야 한다는 말들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 걷는 이들은 많지 않소. 헬쓰 장에 가서 걷기 운동을 하는 분들은 제법 있는 것 같소. 오죽 했으면 그런 장소를 이용하겠소. 사실 그것을 걷기라 할 수는 없소.
걷기는 단지 공간적으로 이동하거나 건강을 위한 것만이 아니오. 걷기 자체가 인간이 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오.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걷기는 도(道)을 닦는 것이오. 걷기를 통해서 세계를 직면하고, 세계 속의 자신을 경험하게 되오. 세계와의 일치라 할 수 있소. 자동차를 타고는 이런 게 불가능하오. 세상이 스쳐 지나갈 뿐이오. 걷거나 조깅 정도의 속도로 움직여야만 세상이 살아서 나에게 말을 거는 거요. 요즘 제주도 올레 길 걷기가 유행이라 하지 않소. 스페인의 산티아고 걷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하오. 이런 유명한 길을 굳이 찾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주변에 걸을만한 곳은 널려 있을 거요. 큰 도시라면 공원을 찾아야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하양 정도의 시골이라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소.
그대의 형편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금년 한 해 걷기에 나서보시구려. 아니면 조깅을 하든지, 또는 자전거 타기도 좋소. 가능한 혼자서 해야 하오. 머리를 쳐들고 수직으로 꼿꼿이 서서 천천히 움직여 보시오. 인간을 뜻하는 헬라어 ‘안트로포스’도 직립원인을 가리키오. 걸으면서 하늘을 보게 될 거요. 땅에 두 발을 딛지만 땅을 넘어설 수 있게 될 거요. 아주 먼 우리의 조상이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상상의 나래를 펴보시오. 일상 자체가 구도(求道)요. (2010년 1월8일, 토)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에 대해(7) -병- / 정용섭목사 (0) | 2024.08.12 |
---|---|
일상에 대해(6) -먹기- / 정용섭목사 (0) | 2024.08.11 |
일상에 대해(4) -숨쉬기- / 정용섭목사 (0) | 2024.08.10 |
일상에 대해(3) -보기와 듣기- / 정용섭목사 (0) | 2024.08.10 |
일상에 대해(2) -돈- / 정용섭목사 (0) | 2024.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