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2 12

율법을 전적으로 준행해야 할 이유(신32:44-47)

율법을 전적으로 준행해야 할 이유(신32:44-47) 본문에서 모세는 임종을 예견하며 이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것을 최후로 당부한다. 모세는 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생명이요, 불순종은 저주라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세의 최후 교훈은 첫째, 백성들 스스로 하나님의 율례를 명심하여 지키라는 것이며, 둘째, 하나님의 율례를 그들 다음 세대들에게 충실하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전적으로 준행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호세아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호세아4:1-2) 멸망 직전의 이스라엘의 상태가 이러했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이 경고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시면서 "너희 그러다 맞는다, 맞는다"고 하시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만의 모습입니까? 우리 자신 안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까? 우리가 속한 교회는 괜찮습니까? 이 나라는 어떻습니까?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고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참 좋은 봄날입니다. 이렇게 때를 주관하시고 친히 영광을 선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가 되심이 우리에게 임한 최고의 복이요 우리가 누리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함께 누리며 믿음의 순례길을 같이 갈 수 있음도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고 믿음의 공동체에서 섬김의 길을 가고 있는 집사님의 그 모습이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교회의 자랑이 됨이 분명합니다. 비록 구체적으로 믿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며 지내지 못함이 아쉽지만 그래도 집사님은 낯설지 않습니다. 말씀 묵상을 나누고 위하여 기도하고 있기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사귐의 복을 허락하셨기 때문일 겁니다. 저를 장충교회로 인도하시고 좋은 목사님을 만나게 하시고 믿음의 훈련도 받게 하시고 좋은 믿음의..

그가 살아나셨다'(3)(막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막16:2) 2절에 다시 ‘때’가 언급됩니다. 1절에서도 때가 언급되었습니다. 양쪽 모두 안식일이 그 중심입니다. 1절은 단순히 안식일이 지났다는 사실만 거론합니다. 여성 제자들이 향품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전하려는 것이었겠지요. 안식일이 지났다는 것은 토요일 저녁이 되었다는 뜻인데, 그때 향품을 사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다음날 낮이 돼야 물건을 살 수 있었겠지요. 이런 논리적인 모순을 성서기자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2절이 가리키는 때는 아주 구체적입니다.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라고 합니다. 세 가지 단어가 중복됩니다. 이들이 무덤으로 갈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막 15:47절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가 살아나셨다'(2)(막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가 두었다가'(막16:1) 부활은 단순히 우리가 죽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에만 머무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에 관계된 모든 것들은 부활을 중심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도 역시 부활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창조의 완성은 부활이니까요. 심판도 역시 부활에서 영적 현실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심판은 부활 생명이 아닌 것들이 제거되는 사건이니까요. 부활을 빼놓고는 기독교 신앙이 아예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 부활의 가장 원초적 전승에 세 명의 여성 제자들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곱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아리마대 요셉이 예..

'그가 살아나셨다'(1)(막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가 두었다가'(막16:1) 우리는 마가복음 묵상의 긴 여정 끝에 마지막 단락에 당도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묵상은 바로 이 단락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막 16:1-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마가복음의 보도입니다. 중요한 사본 대다수에는 막 16:9-20절이 없습니다. 또는 한글 개역개정 역처럼 괄호로 묶었습니다. 거의 모든 신약학자들이 공통으로 인정하듯이 이 부분은 부활 전승이 교회에 보다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뒤에 보충된 것입니다. 원래의 마가복음은 일단 16:1-8절로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어정쩡합니다. 여성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예수..

사귐의 존재 (창2:18-25) / 김영봉목사

해설: 이어서 하나님은 홀로 있는 남자를 위해 여자를 지으십니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18절)라는 말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삼위의 하나님이시듯, 인간도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좋지 않다”는 표현은 앞 장에서 후렴처럼 반복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표현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피조 세계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이 인격적인 사귐을 나누며 살아갈 대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남자의 외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하나님은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들”과 소통하며 인격적인 사귐을 경험하게 하십니다(19절).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는 모든 생명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시는 동안..

말씀을 지켜 세상에 등불을 비추라!(눅11:33-36)

말씀을 지켜 세상에 등불을 비추라! (누가복음 11:33-36)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등불에 대해 비유하면서 몸과 눈의 관계에 기초해서 등과 빛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눈이 몸의 창문이라는 말을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 신체 기관 중에서 눈이 참 중요합니다. 눈이 건강하면 몸의 속이 환하게 밝을 것입니다. 눈이 침침..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 (신 26:1-19)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첫 수확을 거둘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자세를 말씀합니다. 첫 수확을 거두고 그 열매를 제사장에게 가져가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첫 수확은 생명의 약속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신 사실을 기억합니다. 이스라엘은 아람에서 방황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20년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애굽에서 종 노릇하다가 출애굽한 역사를 기억하며 감사 제사를 드립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공적 고백입니다. 그리고 수확한 것을 레위인과 거주하는 손님들과 함께 즐거워합니다. 셋째 해 십일조는 래위인, 손님 그리고 과부와 고아들에게 나누어 주고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십일조의 기능 가운데 사회적 약자를 향한 이웃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

참 제자가 되는 길

참 제자가 되는 길 글쓴이/봉민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속하기 위해서 값을 치른 사람들이다. 우리 주님이 이 모든 죄 값을 치러 주셨다. 값없이라는 말은 값을 이미 주님께서 치러 주셨다는 말이다. 주님의 희생의 대가는 세상에 그 무엇으로도 값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은혜에 답하는 길은 주께서 내게 부탁하신 것을 충성된 자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이다. 교회의 목적은 친교도 교육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우는 일이다. 제자 삼는 일이 성도의 본분이요 교회의 존재 이유다. 하나님은 주님의 뜻을 이룰 사명자, 그 한 사람을 찾으신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대답할 차례다. 그 한 사람이 내가 되기를 원한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주님을 위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 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