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새 하늘과 새 땅 (계 21:1~8, 22~27) / 이재훈 목사

새벽지기1 2025. 6. 27. 06:11
흔히 예수님 믿고 천국에 간다고 말하는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천국이 우리에게 온다’고 합니다. 또한 ‘천국’이라는 단어 대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주신다는 약속으로 귀결됩니다. 성경에서 약속된 미래는 죄로 망가져 있고, 무너져가는 세상에 심판이 있을 것인데, 심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온전히 새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 그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들은 신실하고 참되니 너는 기록하여라.’ 그는 또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시작과 끝이다. 내가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줄 것이다’”(5~6절).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이 죄로 말미암아 깨어지고 혼돈 가운데 있었지만, 이제 심판과 구원을 통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목적을 이루신다는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졌을 때 마지막 종말에 이루어질 “다 이루었다”는 선언을 미리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만물이 새롭게 되는 역사가 이미 이루어졌지만,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계시록>에서 “다 이루었다”는 선포가 확실하게 성취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두 세대가 중복되는 현재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의 때를 확대해 보면  두 세대가 중복되는 현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부활 승천하셨고,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시는 그 기간에 이미 옛 시대는 끝나고 새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 가운데 옛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재림의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만물이 새롭게 될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종말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안에 형성되는 종말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완성되는 종말,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는 종말의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종말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두 시대가 중복되는 이 기간은 긴장의 기간이요, 고난의 기간이요, 싸움의 기간입니다. 이미 다 이루셨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기간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기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기간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존재로서 마지막 날에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고 소망하며 살아야 할 기간입니다. 또 두 시대가 중복되는 기간은 선교의 기간입니다. 하나님의 선교가 완결될 때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옛 시대의 세상 속에 살지만 새 시대에 속한 사람으로서,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 영원에 속한 사람으로서 옛 시대에 묶여있는 영혼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도록 헌신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어느 날 두 시대의 중복이 끝날 것입니다. 옛 시대에 속한 모든 것이 소멸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넘어가지 못한 모든 것은 무서운 죽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회복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일은 기억나지 않을 것이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기뻐하고 영원히 즐거워하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의 성읍으로 창조하고 그 백성을 즐거움의 백성으로 만들겠다’”(사 65:17~18).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을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고, 이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때 변화를 설명하는데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회복입니다.  
“그리고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 더 이상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이나 우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을 것이다. 이는 처음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다’”(3~4절).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할 것이며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7절).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우리 하나님이시며, 나는 그의 백성인가? 우리는 그분의 백성들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백성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 가운데 있는 이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끊어져야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래서 21장 7절에서 ‘이기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겼다는 것은 회개했다는 의미입니다. 악에 휩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이들은 그분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나라 도시의 회복
 
둘째, 하나님 나라 도시의 회복입니다.  
“또 나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자기 남편을 위해 화장한 신부처럼 준비돼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2절).
“그러고 나서 천사는 성령으로 나를 이끌어 크고 높은 산으로 데려가 거룩한 도성, 곧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예루살렘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이 도성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이 빛은 수정처럼 빛나는 벽옥과 같았습니다”(10~11절). 
거룩한 도성, 도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조하셨는데, 마지막에는 인류에게 새 예루살렘 도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도시에 모여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를 만들었지만, 하나님이 도시를 구속하셔서 낙원의 축복을 회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로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도시이자 동시에 낙원이며, 성전입니다. 이제 큰 도성 바벨론은 멸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해 주신 도시,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공간의 회복, 영토의 회복, 도시의 회복입니다. 바벨론이 멸망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시, 새 예루살렘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은 타락한 음녀이지만, 새 예루살렘은 순결한 신부입니다. 바벨론은 마귀들이 드나드는 장소이지만,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바벨론의 화려함은 다른 이들을 착취하는 데서 나왔지만, 새 예루살렘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애통과 신음과 슬픔으로 가득 찼지만, 새 예루살렘은 기쁨과 빛으로 충만합니다. 바벨론은 세상 나라들을 타락시켰지만, 새 예루살렘은 나라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화해시킵니다.
새 예루살렘의 길이와 폭, 높이가 1만2천스타디온이라고 합니다.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2천2백km인데, 당시 로마 전체 영토와 얼추 비슷한 크기라고 합니다. 새 예루살렘을 사각형으로 묘사한 것은 고대 사람들이 완벽한 도시를 상상할 때 사각형으로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완벽한 도시입니다. 하나님이 더 좋은 도시, 더 축복된 도시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임재와 통치의 회복
셋째, 하나님 나라 임재와 통치의 회복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는 도성 안에 성전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양께서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도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필요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도성을 비추며 어린양께서 도성의 등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22~23절). 
“그들이 나라들의 영광과 존귀를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돼 있는 사람들 외에 모든 속된 것과 가증한 것과 거짓을 행하는 사람은 도성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26~27절).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1장 이전에는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하늘로 제한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고, 하늘에서 말씀하시고, 천사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21장 이전에는 보좌에 앉으신 분은 하늘에만 계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고 땅에 계시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보좌에 계신 분이 하늘에 계시지만, 이 땅에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예배자들 그리고 핍박받는 교회에 숨어계시듯 임재하셨습니다. 그런데 21장에 들어와서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통치가 땅으로 내려오심으로써 그분의 통치가 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하늘과 땅의 간격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21장 초반부에 “장막이 함께 하셨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 의미가 아닙니다, 하늘의 하나님 보좌 통치가 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지는 통치의 회복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입니다. 그로 인해서 옛 시대에 이 세상에 존재했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혼돈과 악을 상징하는 바다가 없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슬픔과 눈물이 없습니다. 애통이 없습니다. 거짓과 부정과 우상숭배하는 이들이 없습니다. 성전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곧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해와 달과 다른 발광체와 빛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도성을 비추고, 어린 양이 도성의 등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없기 때문입니다. 닫힌 문이 없고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곳에는 밤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하는 모든 악의 세력이 완전히 사라지기에 죽음이 없고, 슬픔이 없고, 눈물이 없고, 거짓이 없고, 부정이 없고, 어둠도 없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세워집니다. 우리도 육신의 몸을 입을 때와 다른 차원이 됩니다. 만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옛 시대에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가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었지만, 만물이 새롭게 됨으로써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합니다. 하나님이 새 창조를 이루심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도래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는 어린 양의 문화가 짐승의 문화를 대신하고, 생명의 문화가 죽음의 문화를 대신하고, 평화의 문화가 불안과 두려움의 문화를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백성이 되고,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분의 백성들이 회복되고, 그분의 도성이 회복되고, 그분의 통치가 온전히 회복됨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끊어내며 끝까지 죄 가운데 있는 이들을 심판하심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하십니다. 여러분,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말씀하는 책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역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는 마지막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종말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종말을 알고, 그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 세상 가운데 담대합니다. 휩쓸리지 않습니다. 이기는 자로 끝까지 승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