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생 하프 타임 / 원용일 목사
사물인생 하프 타임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큰물을 건너 구원받은 홍해 사건을 기록한다. 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이런 감격적인 ‘홍해’를 경험했는가? 구원에 여러 가지 느낌과 이미지가 있지만 이런 가슴 벅차게 드라마틱한 홍해의 경험도 있다. 구원은 인생의 큰 변화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장면을 경험한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생활을 마치고 이 홍해에서 새로운 시작을 경험했듯이 우리도 이 홍해의 구원 경험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경험한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구원의 체험만 있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홍해라는 큰물을 건너 구원받았다고 하여 모든 인생이 아름다운 결말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 홍해의 구원은 한 사람 인생의 시작이지 결코 끝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격적으로 홍해를 건넌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맞닥뜨린 곳은 수르 광야였다.
‘수르’라는 말은 ‘장벽’이라는 뜻이다. 동방 종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해놓은 장벽을 피해 힘든 길을 사흘이나 지나갔는데도 물을 찾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이 경험한 두 번째 물은 물이 아예 없는 극한 상황이었다. 인생에서 이런 수르광야를 경험했는가? 헤쳐나가기 힘든 장벽이다. 살아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물이 없는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이 수르 광야도 우리의 인생길의 한 과정이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홍해에서 감격적 구원을 체험했고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있는가 말이다. 빌립보서 1장 29절이 답을 준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도 인생에 고난이 있다. 믿음으로 구원을 허락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어려움도 주신다. 우리가 이 사실을 수긍하며 인내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 광야에서 고생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마라에 도착했다. 거기에 물이 있었다. 그렇지만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지금 마라에 있는가? 일이 풀리는 듯하다가 꼬여 견딜 수 없는가? 이런 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처럼 인생의 마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많다. 우리는 마라에서 물이 쓰다고 불평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다른 길이 있다.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라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고통스러우면 화가 난다. 그때 하나님께 그 화의 에너지를 발산하듯이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여호와라파, 치료의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고통받아 울부짖는 자녀들을 하나님이 치료해주신다. 치료받고 싶으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 계명을 잘 지키면 치료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런 교훈을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출 15:25-26). 홍해와 수르와 마라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은 엘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만끽할 수 있다. 엘림에서는 좀 게을러지고, 좀 더 재미있게 시간 보낼 수 있다. 한 해의 하프 타임을 보내는 시기에 엘림을 누리며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by 원용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