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주 하나님 앞에 (출 23:14-19)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6. 18. 05:18

해설:

안식일과 안식년 그리고 희년에 대한 규정에 이어, 세 차례의 절기에 대한 규정이 나온다(14절). 한 주간의 마지막 날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한 해에 세 번 절기를 지켜야 했다. 

 

첫째, “무교절”은 이집트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일 주일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기간이다. 이 절기에 대해서는 12장 15-20절과 13장 3-10절에 자세히 나와 있다. 첫날과 마지막날에는 모두가 모여 예배를 드려야 했고, 예배 중에 예물을 드려야 했다(15절).

 

둘째, 밀이 익어 추수한 후에 그들은 “맥추절”(16절)을 지켜야 했다. “칠칠절”(34:22)이라고도 부르고, “오순절”이라고도 부른다. 축제는 일 주일 동안 지속되었고, 첫날과 마지막날은 모두가 모여 예배를 드렸다. 오월 하순 혹은 유월 초순에 지키는 절기다. 후에 이 절기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의미가 더해졌다. 

 

셋째, 마지막 추수한 후에 “수장절”을 지켜야 했다. 이 절기는 “초막절” 혹은 “장막절”(레 23:33-43)이라고도 불렸다. 구월 하순이나 시월 초순에 지키는 절기로서, 후에는 광야 유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의미가 더해졌다(레 23장 42-43절). 이 절기도 역시 일 주일 동안 지속되었고, 첫날과 마지막날에는 예배를 드렸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세 절기를 반드시 지켜야 했다(17절).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 때 “피를 누룩 넣은 빵과 함께”(18절) 바쳐서는 안 되었다. 피는 생명이며,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레 17장 14절). 따라서 피를 마시는 것은 생명의 주인인 하나님께 죄를 짓는 행위가 된다. 제물을 드릴 때에도 피는 모두 흘려보내야 했다. 이 금령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피를 마시고 싶은 갈망을 불러 일으켰다. 피를 마심으로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누룩 넣은 빵에 피를 적셔 제물을 드리는 꼼수는 피를 먹고 싶은 욕망에서 나왔다. 

 

“기름을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는”(18절) 행위는 의도적일 수도 있고(남은 것을 자신이 먹어 치우려는) 부주의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 규정은 제물을 바칠 때 정성을 다해, 온전하게 바치라는 의미다. 짐승을 제물로 바칠 때처럼 곡물이나 열매를 바칠 때에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19절). 짐승을 바칠 때 일부를 떼어 놓는 행위와 곡물이나 열매를 바칠 때 아무 것이나 바치는 행위는 근본에 있어서 같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34장 26절과 신명기 14장 21절에도 나온다. 우유와 고기를 철저히 분리하여 요리하는 유대인들의 전통이 여기서 나왔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것은 당시 이방 민족들이 행하는 종교 의식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축의 생산력이 더 증대한다고 믿었다. 이것을 금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가축의 생산력은 오직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려는 뜻이 있다. 둘째,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것은 창조 질서와 인간성에 어긋난다.     

 

묵상:

한해에 세 번 절기를 지키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규정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세심한 배려에서 나왔습니다. “무교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노예 살이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게 하려는 뜻입니다.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주신 은혜 때문임을 기억하게 하려는 뜻입니다. 첫 추수 후에 지키는 “맥추절”과 마지막 추수 후에 지키는 “수장절”은 그들의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감사하게 하려는 뜻입니다. 절기에 드리는 제사에 최선의 제물을 가지고 와서 온전히 바치도록 요구하신 것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절기와 오늘 세상에서 즐기는 축제는 그 동기와 목적과 방법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서의 절기는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세상의 축제는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게 합니다. 성서의 절기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기억하고 인간의 본래적 삶을 회복하자는 것이고, 세상의 축제는 모든 질서와 규범을 넘어 혼돈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성서의 절기는 세상의 첫 날인 것처럼 깨어나자는 뜻이고, 세상의 축제는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마구 망가지나는 뜻입니다. 성서의 절기는 창조와 회복을 위한 것이지만, 세상의 축제는 파괴와 훼손을 위한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남자들은 모두 한 해에 세 번 주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17절)는 말씀은 오늘을 사는 도시민들도 귀담아 듣고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 주일에 하루, 매 년 정기적으로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기억하여, 감사하고 축하하고 베푸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 새 세상의 축제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루에 한 시간, 일 주일에 하루, 매 년 정한 시간, 주 하나님 앞에 나와 머물기를 원합니다. 주 하나님 앞에서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고, “참 좋다!”고 하셨던 그 태초의 평화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저희의 분주한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바쁜 걸음을 붙잡아 주십시오. 주님 앞에 머물러 있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기쁨이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