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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브랜드 선교사의 산지! / 원용일 목사

새벽지기1 2025. 6. 13. 04:36

에블린 브랜드 선교사의 산지!

오트버그 목사가 유명한 외과의사 폴 브랜드의 인생보다 더 놀라운 삶을 살았던, 그의 어머니 에블린 브랜드를 소개한다. (존 오트버그, 『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 두란노 펴냄, 340-349). 에블린은 젊었을 때 인도로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1909년에 제시라는 청년과 결혼한 뒤 인도 남서부 산악 지역으로 가서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아들 폴 브랜드도 태어났다. 두 선교사는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의료 혜택을 받는 일을 위해 노력했다. 마을의 길을 닦아주는 등 사람들이 가난으로 인해 겪는 소외 현상을 줄여나가는 일에 힘썼다. 그런데 사역 초기에 단 한 사람의 회심자도 얻지 못했고 그렇게 세월이 7년이나 흘러갔다. 그러던 중 그 지역 부족 종교의 제사장이 고열이 나며 사경을 헤매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 누구도 제사장 곁에 다가가지 않았다. 그러나 에블린과 제시 선교사는 죽어가는 제사장 옆에서 그를 정성으로 간호했다. 제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예수님이야말로 참 신이심이 틀림없습니다. 제시와 에블린만이 죽어가는 나를 돌봐주니 말입니다.” 마을의 제사장은 제시와 에블린에게 자기 아이들을 맡기며 자기가 죽으면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 일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영적 전환점이 되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점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다.

에블린과 제시는 이후 13년 동안에 많은 열매를 맺으며 선교 사역을 계속했다. 그 뒤 제시 에블린 선교사는 그곳 인도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때 에블린의 나이가 50세였는데, 부족 사람들은 다 에블린이 영국으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에블린은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근방에 ‘브랜드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고 20년을 더 그곳에 머무르며 사역했다. 그런데 은퇴할 무렵 에블린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더 사역하기 원했다. 마치 갈렙이 85세에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요구했듯이 말이다(수 14:11-12). 에블린도 비록 은퇴해야 할 나이에 ‘산지’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영국에 있는 선교본부에서는 에블린의 사역 기간을 5년 더 연장해 줄 수 없다고 알려왔다. 하지만 에블린 선교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작은 오두막을 하나 지었다. 산을 다닐 때 탈 조랑말 한 마리도 샀다. 그리고 이 70대 노인은 조랑말에 올라타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예수님을 전했다.

75세 되던 해의 어느 날, 에블린은 말에서 떨어져 엉덩이뼈가 부러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에블린 선교사는 18년을 더 조랑말에 올라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다. 말에서 떨어지는 것도, 뇌진탕도, 질병도, 노화도 그의 발걸음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아흔세 살이 되자 마침내 에블린 선교사는 더 이상 말을 탈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그를 들것에 실어 이 마을 저 마을로 데리고 다녔다. 에블린은 그 뒤로도 2년을 더 들것에 실려 다니며 사람들을 돕는 ‘선물’로 자신을 인도 사람들에게 드렸고 그렇게 생애를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