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공부(98)- 산이 부른다 / 정용섭 목사
산이 부른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영국 출신 어느 유명 산악인이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우문현답을, 또는 선문답을 했다고 한다. 언어가 말을 거는 경험을 하는 시인들처럼 산악인들은 산이 부르는 경험을 한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생명을 담보해야만 하는 행위를 반복해서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마약과 같아서 그걸 맛본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행동까지 하게 만든다.
마약처럼 인간의 영혼을 완전히 제압하는 그 산행의 맛은 표현하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일단 절대 희열이라고 봐도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산 이외의 그 어떤 대상을 통해서도 주어지지 않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배타적이고 독보적인 경험이다. 만약 그것과 비슷한 것을 다른 데서도 맛볼 수 있다면 그는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목사들은 산의 부름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산악인들처럼 하나님을 절대적인 희열로 경험하고 있을까?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거나 종교적 교양의 차원으로만 아는 목사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것으로는 절대 희열을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영혼의 중심이 계속해서 흔들린다. 쉬운 말로 끊임없이 한눈을 판다. 목회 성공에 매달리고 교회 정치에 휩쓸린다. 그러면서도 내면의 영적인 만족을 누리지 못하니까 밖으로부터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 동분서주한다. 한국교회 목사들이 공연한 일로, 또는 별로 본질적이지 않은 일로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하나님을 절대 희열로 경험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게 겉으로 표시 나는 건 아니다. 얼굴이 유달리 붉게 빛난다거나 목소리가 매력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인간적인 실수를 전혀 행하지도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능력이 갑자기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모세도 하나님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성질을 다스리지 못하기도 했고, 실수도 했다. 하나님을 절대 희열로, 즉 생명의 충만감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님 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는 상황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영적 다이내믹을 가리킨다. 그것을 검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하루, 이틀, 더 나가서 일주일이나 한 달, 또는 일 년이나 그 이상이라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존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를 보면 된다. 이것은 곧 하나님만으로 삶을 견뎌낼 수 있는가에 대한 검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