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셸(5) / 정용섭 목사
기도는 감정의 범위를 넘어선다.
기도는 사람이 초월에 다가서는 방식이다.
기도는 사람을 장엄함과 관계 맺게 만들며,
그 신비 속에 발을 들여놓게 만든다.
의지는 때때로 영혼의 지성소 밖에 있다.
의지는 위대한 것들로 안내하지만
언제나 그 위대한 것들을 통제하지는 않는다.
기도하려는 의지는 그 문을 열지만 들어가는 것은 그 산물이 아니다.
의지는 창조적인 능력이 아니라 보조하는 능력이며, 영혼의 하인이다.
의지에 의해 창조적인 힘이 배출될 수는 있지만
그 힘 자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도하려는 마음은 기도가 아니다.
그보다 더 깊은 영혼의 힘과 자질이 동원되어야만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 (73쪽)
이 부분이 쪼금 어렵다.
기도가 감정의 차원이나 의지에 차원에 머물지 않고
영혼의 차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인데,
앞의 두 차원은 쉽게 이해가 되나 마지막 차원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혼동한다.
거칠게 말하면, 부흥회에서 행해지는 기도는 대개 감정의 차원이고,
주일공동예배 때 대표기도로 행해지는 기도는 의지의 차원이다.
감정과 의지가 다 중요하다.
이것이 영혼과 관계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런 방식으로 영적인 공명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헤셸이 말하는 영혼의 힘과 자질로부터 나오는 것과는 다르다.
시를 읽을 때 어떤 사람은 혼자 감정에 도취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것도 나름으로 시 경험이라 할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 자체와의 일치가 핵심이다.
과연 영혼의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도 부끄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