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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요 1:4), 요한복음 묵상(6)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5. 2. 5. 05:21
요한복음에는 ‘생명’(조에)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그 단어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익숙하다.
익숙하다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다.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모를 수 있다.
현대인들이 생명에 대해서 생각이나 하는가?
뻔한 거라고 생각하거나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은 로고스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말한다.
로고스와 생명의 관계를 아는 게 요한복음의 핵심이다.
이걸 아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목사들도 대개는 모를 것이다.
모르면서도 설교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신자들이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니 목사들은 마음 편하게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쉽게 목회를 할 수 있다.
사람들만 잘 다루면 목회는 그냥 굴러간다.
그게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로고스는 예수다.
로고스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말은 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게 무슨 뜻인가?
예수 밖에는 생명이 없었다는 말인가?
도대체 그 생명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의 공부가 어디서 시작되어야 하는지가 명백해졌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부다.
선입관을 버리고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