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9), 2월20일(수) / 정용섭 목사
어린왕자가 방문한 다섯 번째 별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작았다.
가로등과 관리인만 있을 뿐이다.
관리인은 가로등을 키고 끄는 명령을 수행하느라
한숨도 못자고, 다른 아무 일도 못했다.
그는 1분마다 등불을 키고 꺼야 한다.
어린왕자는 그에게 세 발걸음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별이니까
굳이 가로등을 키고 끌 일이 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늘 환한 낮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당신이 쉬고 싶을 때는 항상 걸어 봐요.
그러면 당신이 바라는 대로 낮이 계속 될 거에요.”
그러나 이 사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도 결국 잠을 잘 수는 없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독자가 상상해야 한다.
지금은 간단히 스위치 하나만으로 가로등을 키거나 끌 수 있다.
아니 모든 게 자동으로 점멸하게 되어 있을 거다.
20세기 중반만 해도 유럽의 도시는
가로등 키고 끄는 일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전혜린 씨의 수필에 보면 1950년대(?)에 그가 뮌헨에 유학 갔던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에 가스등 이야기가 있다.
안개가 내리깔리는 황혼의 거리에 차례대로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낭만적이다.
<어린왕자>의 저 가로등 관리인은
기계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실존을 그대로 보여준다.
명령을 피할 수도 없고, 상황을 개선할 수도 없다.
어린왕자는 그 사람에게 연민을 느꼈으나
별이 너무 작아서 옆에 가서 그를 도와줄 수도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별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