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회의와 의문이 들 때 (시편 10편)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4. 12. 26. 06:21

해설:

학자들은 9편과 10편이 원래 하나였을 것으로 본다. 두 시편을 하나로 간주하면 ‘이합체 시편’(첫 문장을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시작하는 형식의 시)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0편에 표제가 없는지도 모른다. 9편에서는 다윗은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원수들의 폭행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다. 10편에서는 탄원의 목소리가 더욱 강해진다.

 

악한 자들의 계속된 폭행으로 인해 다윗은 주님께서 멀리 계신 것 같고 숨어 계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1절). 그는 하나님께, 악한 자가 스스로 파 놓은 올무에 빠지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2절). 

 

이어서 다윗은 악한 자들에 대해 고발한다. 그들은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악을 일삼으면서 의롭게 사는 사람들을 공격한다. 악행을 일삼는데도 하는 일마다 잘 되니 거침이 없다(3-6절). 그들은 “기만과 폭언과 욕설과 악담”을 입에 달고 살면서(7절) 만만해 보이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유린한다(8-10절).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다 해도 땅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믿고 악행을 지속한다(11절).

 

다윗은 하나님께, 어서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고난받는 사람들을 구원해 달라고 청한다(12절). 악한 자들이 악행을 일삼으면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을 다윗은 견딜 수가 없다(13절). 다윗은, 학대받는 사람으로서는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그들을 실망시키지 마시고(14절) 악한 자들을 벌해 달라고 간구한다(15절).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기도를 끝난다. 주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는 그분께 대한 믿음을 회복시키는 법이다. 그는 “주님은 영원무궁토록 왕이십니다”(16절)라고 고백하면서 주님께서 결국 불쌍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고 소망한다(17-18절).

 

묵상: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 혹은 사회적인 불의의 문제를 두고 기도하는 것은 때로 힘겨운 일입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간구해도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이 오래도록 지속되면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사랑과 정의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악한 자들이 악행을 일삼으면서 하는 말들 즉 “벌주는 이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4절), “하나님은 모든 것에 관심이 없으며, 얼굴도 돌렸으니, 영원히 보지 않으실 것이다”(11절) 혹은 “하나님은 벌을 주지 않는다”(13절)는 말들이 기도자의 마음까지 흔듭니다. 악한 이들이 승승장구 하고 거룩하고 선한 이들이 무고하게 고난 당하는 것을 보면, 아삽처럼 “그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시 73:13)라는 의문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러한 의문과 회의를 이길 힘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악인들의 번영과 의인들의 고난으로 인해 한때 회의에 빠졌던 아삽은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시 73:17)라고 고백합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에 대한 믿음이 회복될 때 비로소 그분께서 그분의 시간에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실 것을 믿고 소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 없이 믿음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