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십자가의 비밀 (이사야서 53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11. 29. 06:20

해설:

52장 13절부터 시작된 ‘네번째 종의 노래’가 계속 이어진다. 52장 13-15절에서 주님은 당신의 종이 고난 당한 후에 영광을 받을 것을 예언하신다. 53장 1절부터는 6절에서는 주어가 일인칭 복수(“우리”)로 바뀐다. 종이 당한 고난과 그에게 행하신 주님의 일은 너무도 놀라워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1절). 

 

그 종은 인간적인 기준에서 볼 때 주목을 끌만한 장점이 하나도 없다(2절). 그가 사람들에게 멸시와 버림을 받는 것을 보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다(3절). 하지만 알고 보니 그가 받은 멸시와 버림과 고난은 “우리”를 대신하여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종이 자신의 죄로 인해 고난 당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우리”를 위해 대신 고난 당하여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얻었는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4-5절). 고집 센 양과 같이 죄악을 탐하는 우리의 죄를 주님께서 그 종에게 지우셨던 것이다(6절). 

 

7절부터는 주어가 삼인칭 단수(“그”)로 바뀐다. 그 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에게 지워진 고난을 감당한다(7절). 그는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지만 모두가 그 자신의 죄 때문에 그런 줄로만 안다(8절). 아무 죄 없이 고난을 짊어진 그 종은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힌다(9절). 주님께서 그렇게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속건제물”로 드려진 것이고, 그 희생으로 인해 그는 주님의 뜻을 이룬다(10절). 

 

11절과 12절은 죽기까지 복종한 그 종에게 주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예언이다. 주님께서는 고난 당한 후에 그 종을 높여 주실 것이며, 그 종은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할 것이다.  

 

묵상:

‘네번째 종의 노래’는 십자가 사건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도들과 초대 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그분이 메시아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분이 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풀어야 했습니다. 

 

만일 네번째 종의 노래가 없었다면 그들은 그분의 십자가 희생의 의미를 풀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한 속건제물로서 당신 자신을 드림으로써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속건제물은 죄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값을 치루는 것입니다. 메시아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당신의 생명을 드려 온 인류의 죄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값을 치루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당신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신 그 종을 높여 주셨습니다.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 주시고 사십 일 후에 하나님의 자리로 들어 올리셨습니다. 그분은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때까지 성령을 통해 믿는 이들과 함께 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어 가십니다. 

 

그분이 인간적으로 얼마나 볼품 없었고 얼마나 많은 멸시와 거부와 모욕과 박해를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부활 이후에 일어난 일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일어날 일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듣지도 못한 일”이며 “아무도 말하여 주지 않은 일”(52:15)입니다. 십자가의 비밀은 너무나 놀라워서 믿기 어렵고 너무나 좋아서 믿기 어렵습니다. 합리성을 따지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네번째 종의 노래’의 중간에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한 것은 ‘신의 한수’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를 읽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그 “우리” 중 하나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려는 문학적 장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대속 사건이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합리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 신비와 비밀을 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