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새끼(5)(막11:7)
'나귀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막11:7)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위한 준비가 이제 끝났습니다. 제자들은 나귀새끼 등에 자신들의 겉옷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예수님이 올라타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사실적으로만 본다면 조금 우스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큰 나귀도 아니고 나귀새끼를 서른 살의 남자가 탔다는 겁니다. 나귀새끼가 좀 힘들어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위에 올라탄 사람도 좀 불편했겠지요. 혹시 2천 년 전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신체가 작기 때문에 나귀새끼를 타더라도 전혀 불편할 게 없었을까요?
성서기자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분의 정체성을 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분은 평화의 왕이라고 말입니다. 평화의 왕은 말을 타지 않습니다. 말을 타고 도시로 들어가는 사람은 개선장군입니다. 개선장군은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인물입니다. 예수님은 평화로 세계를 지배하는 인물입니다. 평화에는 지배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군요. 평화를 선포하고 평화를 이뤄낸다고 말해야겠군요. 이런 평화의 왕이 타고 들어갈 동물은 나귀새끼가 제격입니다.
개선장군도 역시 평화를 이루기는 이뤘군요. 그는 전쟁과 폭력과 파괴로 평화를 강요했습니다. 힘으로 적국에게 복종을 요구했습니다. 이제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오기는 했지만 그건 참된 평화가 아닙니다. 그건 일방적인 평화입니다. 팍스 로마나! 이런 평화는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힘을 자랑하던 로마는 결국 그 힘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십자가였습니다. 그는 지금 십자가 처형을 당하러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로마에 의해서 반역죄로 처형당한 예수님의 평화는 강요가 아니라 은총이었습니다. 바로 그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평화를 상징하는 나귀새끼를 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