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날’ 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느헤미야 8:9~12)
“참된 주의 날을 지키는 것은 주의 날의 의미에 합당하게
예배와 안식을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의 날을 지키는 것은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면서 그것과 별도로 안식 후 첫 번째 날 함께 모여 예배드리며 주의 날을 지켰습니다. 그 명칭은 후대에 붙여졌을지라도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주의 날의 전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8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모든 안식이라는 하나님의 질서를 예수님께서 완성하셨고 성취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많이 고치셨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공통점은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병자들은 모두 응급환자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안식일 규례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지만 응급환자들에게는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굳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시며 당시 안식일 규례에 도전하시고 그것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안식일 규례는 하나님께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신 것은 안식의 완성이 세상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일이나 절기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과 관련된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런 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실체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골 2:16~17). 구약의 율법과 제도들이 여러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앞으로 올 것의 그림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약의 모든 규례들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여러분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실체였기에 더 이상 안식일의 규례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나 의무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절기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이 아닌 안식 후 첫날에 모여 예 배드리는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내적인 자유에 근거한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안에서 자유가 없었다면 안식일이 아닌 날에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주의 날’ 의 세 가지 의미
그리스도인들이 안식 후 첫날 모여 그날을 ‘주의 날’이라고 부를 때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오늘날 우리가 주의 날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첫째, 주의 날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기뻐하는 날입니다.
안식 후 첫째 날 모인 까닭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 다. 주의 날은 안식일을 대체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뻐하며,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날이 주의 날입니다. 주의 날은 예수님 의 부활이 가장 중요한 주제요, 주의 날을 지키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슬퍼하거나 울지 않을 수 있는 그날이 주의 날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할 수 있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활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의 날은 예수님께서 새 창조를 시작 하셨음을 찬양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첫 번째 창조의 세계는 안식이 필요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의 실체인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 다. 그러므로 주의 날은 새 창조를 찬양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 창조의 일원입니다. 새 창조의 주인공입니다. 따라서 주의 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새 창조를 이루고 계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새 창조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바라보며 찬양하는 것이 주의 날을 지키는 것입니 다.
셋째, 주의 날은 궁극적인 안식일인 영원한 쉼에 대한 소망의 날입니다.
“나는 주의 날에 성령께 사로잡혀 있었는데 내 뒤에서 울리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계 1:10). 주의 날 사도 요한은 영원한 나라를 보았습니다. 주의 날은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는 날 입니다. 이 땅과 세상에 속한 것을 바라보지 않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는 날입니다. 주의 날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이며, 동시에 또 다른 세상의 시작을 창조하신 날입니다.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날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육신의 쉼뿐만 아니라 영원한 쉼을 바라보는 소망의 날입니다. 주의 날을 유대인이 안식일의 규례를 지키듯이 율법적으로 지켰다면 그것은 복음이 주는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권면했던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 누리는 주의 날의 의미를 잃어버린 모습입니다. 전염병 사태로 인해서 예배당 중심의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이 기간동안 멈춤으로써 참된 주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내가 주의 날을 지키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신 주의 날 의 의미와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의 날’ 의 역사와 신학적 근거
온누리교회는 안전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거리를 두고 앉을 수 있도록 좌석수를 1/4~1/5 수준으로 줄입니다. 예배에 누가 참석했는지와 어디 앉았는지도 확인할 것입니다. 좌석수가 매우 적은 수로 제한되어서 모든 분들이 참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미리 어느 예배에 참여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합니다. 또한 안전한 예배 환경을 위해서 토요일에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토요일 오전 9시에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한 예배를 드립니다. 오후 4시에는 차세대를 동반한 성도들, 오후 6시에는 청년들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토요일까지 확산해서 주일로 지키는 것이 전통적인 주일성수 개념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 거부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안전이라는 필요로 요일을 바꾸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의문이 있는 성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날의 역사를 살펴보고, 신학적인 근거를 설명드리고 자 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안식 후 첫날 성도들이 모인 ‘주의 날’은 토요일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준수하고 저녁식사부터 모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루는 일몰에서 일몰까지입니다. 안식일의 정확한 기간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입니다. 안식 후 첫날은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토요일 안식일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함께 모였습니다. 그런데 점차 이방인 그리스도이 많아지면서 일요일 이른 새벽으로 시간을 옮겼습니다. 새벽에 모이고 일하러 나갔습니다. 그때는 휴일이 없었습니다. 휴일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칙령 때부터 지정되었습니다. 그들은 가정집이나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날 예배당 예배가 정착된 것은 한참 후입니다. 그러므로 전체 회중이 모이지 못한 것을 “예배가 무너졌다”, “‘주의 날’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의 날을 안식일과 관련짓지 않았습니다. A.D.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칙령부터 초대교회 말기까지 일요일이 휴일로 지정됩니다. 그때부터 일요일 오전에 모이기 시작합니다. 휴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변화가 계기가 된 것입니 다. 사회적 변화에 따라 일요일 오전을 주의 날로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모일 수 있는 날 에 모인 것입니다. 또 이때 예배용 건축물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예배의식이 정교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전용 예배당이 없었습니다. 중세에 들어서면서부터 주의 날 활동금지가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황제들이 주의 날을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금지하는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면서 결국 주의 날이 유대교의 안식일과 비슷해졌습니다. 주의 날은 곧 기독교의 안식일이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시대로 넘어가서 중세에 생겨난 많은 성인의 날들과 특별한 절기들을 폐지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인 일곱째 날 준수가 주의 날인 첫째 날 준수로 바뀌었다는 데 확실하게 동의하게 됩니다. 공통적인 것은 안식일 계명이 도덕법으로서는 지속되지만, 의식법으로서는 폐지된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도덕법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킨다, 쉼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종교개혁자 장칼뱅의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견해를 지지하며 이것을 근거로 토요예배와 주의 날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갖고자 합니다.
첫째, 장 칼뱅은 “안식일은 폐지되었으므로 특정한 날이나 7이라는 숫자조차도 구속력이 없다”면서 복음 안에서 자유를 강조합니다. 둘째, “교회가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유대인들이 거룩한 날을 따로 떼어 놓았던 미신을 타파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한 날에 고착되는 것은 미신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미신이 개입 되지 않는다면 교회들이 다른 날을 엄숙히 지정하여 모임을 갖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정죄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일요일이 아닌 또 다른 날을 엄숙히 지정하여 모임을 가져도 된다는 것입니다.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 “그리스도인은 날짜를 지키는 미신적인 행위를 철저하게 삼가야 한다”고 합니다. 칼뱅은 특별한 날은 모두 폐지되었기 때문에 공동체 집회를 위해 어느 한 날이 정해져 필요에 따라 주의 날로 지키는 것이 중요 하다고 했습니다. 실용적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요일인가가 아니라 주의 날의 의미에 합당하게 예배와 안식을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정해진 날마다 모여 말씀을 들으며 함께 성령을 체험하고, 함께 기도하고, 여호와를 기뻐하고, 부활의 주님을 기뻐하고, 찬양하고, 새 창조를 바라보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고, 육신의 일로부터 쉬는 날이 참된 주의 날을 지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