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밭의 비유’에 이어 사도는 ‘건축물의 비유’로 넘어갑니다.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따라서 건물의 기초를 놓았습니다(10절). 고린도에 교회를 세운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1절). 그 기초 위에 무엇을 더할지, 각자가 선택할 일입니다(12절). 집에 불이 났을 때 타서 없어지는 것이 있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의 불은 두 가지 의미로 풀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땅에서 당하는 환난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 심판의 불을 의미합니다(13-15절). 우리가 세우는 교회가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환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그리고 마지막 심판의 불까지 견뎌낼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세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바울 사도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16절)라고 묻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성령이 거하시므로 믿음의 공동체(교회)는 성전입니다. 인간적으로 어떻게 보이든지 상관 없이 믿음의 공동체는 거룩합니다. 따라서 믿음의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범하면 반드시 심판이 따릅니다(17절). 이렇게 사도는 시기와 다툼으로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한 죄인지를 강조합니다.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갈등을 겪고 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는 인간적으로 지혜롭기 위해 힘쓰지 말고 하나님 앞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17절). 우리가 지혜롭다고 하는 생각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입니다(18-20절).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들을 위해 섬기는 종일 뿐입니다(21절). 고린도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에게 일어난 신분의 변화를 망각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셨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22-23절).
묵상: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주어진 곳은 오직 시온 산 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성령과 함께 하면 그곳이 바로 성전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는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성전은 오랜 역사 속에서 수 많은 수난을 겪었고 오늘까지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유대교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기를 소망하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소망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바로 새로운 성전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마 18:20)는 말씀대로,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주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따라서 믿음의 공동체는 거룩하고 소중합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도록 힘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가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환난을 이겨내고 마지막 심판의 환난까지 이겨낼 수 있도록 바른 믿음, 신실한 믿음, 견고한 믿음으로 세워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목사나 선교사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소명이요 영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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