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appy Birthday! 교회 설립 63주년을 맞는 뜻 깊은 날, 주님의 은총과 자비가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63년 동안 우리 교회에 몸 담아 이 역사를 이루어내신 교우들을 생각합니다. 그분들 중 많은 이들이 하나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계십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지구촌 여러 곳에 흩어져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자비가 그분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오늘 이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교회 설립 주간이면 늘 하는 의식(ritual)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다니신 햇수를 잠시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리는대로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한인 이민 역사가 이 지역보다 더 오래된 하와이, 샌프란시코, 뉴욕 같은 곳에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들도 있습니다. 100년은 안 되었어도 우리 교회보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들도 여럿입니다. 그런 교회들 중에 계속하여 새로운 가지를 뻗어내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 경우가 흔하지 않습니다. 몇몇 사람이 주인처럼 버티고 앉아서 역사와 전통만을 내세우며 교회를 고사시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교회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요!
지난 30년 동안 우리 교회는 한 번도 내홍을 앓지 않고 건실하게 성장하고 성숙해 왔습니다. 그렇게 된 요인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장기 계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기'라 함은 5년을 말합니다. 우리 교회는 1986년부터 장기 계획을 수립하여 변화되는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2013년까지 다섯 번의 장기 계획을 마쳤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의 여섯 번째 장기 계획이 마련되었습니다. 예배 후에 영상을 통해 여섯 번째 장기 계획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게 되실 것입니다.
2.
오늘 우리는 렉셔너리를 따라 출애굽기 32장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중에 63주년을 맞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시내산에 올라갑니다. 백성은 산 아래에 모세가 정해 놓은 경계선 바깥에서 모세의 귀환을 기다립니다. 한 주일이 지나고 두 주일이 지나 한 달이 되었는데도 모세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자 백성이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요즈음 북한의 김정은 제 1위원장이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지 40일이 넘어가자 서방 언론에서 뭔가 변고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고 정보를 수집하느라 부산합니다. 지도자의 오랜 공석은 언제나 큰 불안의 원인이 됩니다.
불안해진 이스라엘백성은 제 2인자였던아론을찾아갑니다. 모세가 어찌되었는지 알 수없으니, 자신들을 인도할 새로운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론이 이 요구에 너무도 쉽게 응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거부했을 겁니다. 하지만 백성이 점점 사나와지니 타협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는 장신구로 달고 있는 금붙이들을 모두 가져오라고 했고, 그것을 녹여서 금송아지상을 만듭니다. 완성된 금송아지상이 공개되자 백성은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4절)라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흥분한 백성을 진정시킨후, 아론은 금송아지 앞에 제단을 쌓고 백성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일 주님의 절기를 지킵시다. (5절)
아론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면서도 동시에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드리면서도 급한 일이 생기면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만 섬기는 것도 문제이지만,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려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과 아론은 십계명의 두번째 계명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 즉 '십언지신'은 613개의 계명 중에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뽑은, 가장 중요한 계명 Top Ten 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은 Top Ten 중에서도Number Two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계명입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어떤 학자가 십계명에 대해 말하면서 "우상숭배가 뭐 그리 대단한 죄라고 Number Two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빈정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우상숭배가 왜 Number Two로 꼽혔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우상숭배는 타락한 인간의 마음이 가장 쉽게 빠지는 잘못이기 때문이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이기 때문이며, 인간이 스스로를 인간 이하로 전락시키고 파괴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망각하는 순간 그 빈자리를 우상으로 만들어 채우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우상에게 속박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인간의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상숭배를 금하셨던 것입니다.
3.
이튿날 이스라엘 백성은 아론의 제안대로 '주님의 절기'를 지킵니다. 그 대목을 6절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튿날 그들은 일찍 일어나서, 번제를 올리고, 화목제물을 드렸다. 그런 다음에, 백성은 앉아서 먹고 마시다가 일어나서 흥청거리며 뛰놀았다.
여기서 '흥청거리며 뛰놀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말에는 성적방탕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말의 '흥청'(興淸)은 연산군이 궁궐에 모아놓은 기생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흥청거리다'는 말은 성적인 타락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원어의 뉘앙스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집트에서 보고 배운 이교제사의식을 흉내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기를 지킨다는 허울 속에서 환락을 즐긴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진노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백성을 살펴보았다.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말아라. 내가 노하였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버리겠다. 그러나 너는, 내가 큰민족으로 만들어주겠다. (9-10절)
이 말씀을 듣고 모세는 다행스럽게 느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 만큼은 살려주신다고 약속하셨고, 자신을 통해 큰민족을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달리 행동합니다. 모세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애원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시면 안된다고,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러시지 말라고 간청을 합니다. 아마도 간절히, 절절히, 오랫동안 그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의 간청에 응답하십니다.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이렇게 간구하니, 주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고, 주님의 백성에게 내리시겠다던 재앙을 거두셨다.
이 대목을 읽고 혹시나 하나님이 때로 분노 조절도 되지 않고 변덕도 심한 분인 것처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불안해서 믿을 수가 없겠죠. 분노 조절이 안 되고 변덕이 심한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 겪어 본 사람은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을 잘 못 읽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는 경우는 언제나 심판하기로 결정했을 때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정해 두신 심판을 철회하기도 하신다는 사실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안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비정한 재판관처럼 자신의 정해 놓은 원칙을 따라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이 정한 원칙을 깨는 한이 있어도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해 주시려는 분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되돌려 놓고 모세는 십계명 돌판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산 아래로 내려 옵니다. 산 중턱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이스라엘 백성이 벌이고 있는 그 참담한 모습이 그의 눈 앞에 펼쳐집니다. 금송아지상을 중심으로 춤을 추며 혼음의 축제를 벌이는 광란의 현장을 보는 순간 모세의 진노가 격발합니다.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양손에 들고 있던 십계명 돌판을 백성에게 내어 던집니다.
진에 내려온 모세는 금송아지를 불에 태우고 빻아서 물에 타 백성에게 마시게 합니다. 그리고는 백성을 향해 "누구든지 주님의 편에 설 사람은 나에게로 나오십시오"(26절)라고 외칩니다. 그 말에 레위의 자손이 모두 그에게 나와 섭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아직도 광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28절에 보니, 그 날 목숨을 잃은 사람이 삼천 명쯤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다음 모세는 다시금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으로 올라가기 전에 모세는 제정신을 차린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크나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주님께 올라가서, 당신들을 용서해 달라고 빌겠습니다." (30절) 다시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는 이렇게 간청합니다.
슬픕니다. 이 백성이 금으로 신상을 만듦으로써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31-32절)
4.
이 이야기에서 모세의 선 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위해 중보하고, 세상 앞에서는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있어서 전부였습니다. 또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인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자신과 백성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성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부지런히 오고 갔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그분의 뜻을 찾는 일을 우선 순위의 맨 앞 자리에 두었습니다. 그에게 맡겨진 과제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을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부지런히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에 충분하도록 늘 깨어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생각과 뜻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 있었습니다. 중요한 고비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았습니다. 자주, 정기적으로, 충분히 하나님을 찾고 또한 그 앞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백성 앞에 섰을 때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 담대하게 증언할 수 있었고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섰던 바로 그 자리가 교회가 서야 할 자리입니다. 저와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교회를 '제사장 공동체'(Priestly Community)라고, 믿는 사람들을 '왕과 같은 제사장'(Royal Priest)이라고 불렀습니다(벧전 2:9). 모세는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만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오가면서 백성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며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내 산 아래에서 우상을 만들어 놓고 쾌락을 즐기던 이스라엘 백성과 아주 흡사합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질병 중 하나는 우상 숭배입니다. 실제로 금송아지와 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도 있고, 자랑스럽게 사탄을 숭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 전, 보기에도 끔찍한 사진을 SNS에서 보았습니다. 세 사람을 유괴하여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Caius Veiovis라는 청년의 사진입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에 따라 얼굴에 성형 수술을 하여 기괴한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지만, 주일 아침에 여러분을 구토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삼가했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습니다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상 숭배의 문화에 젖어 있습니다. American Idol이라는 프로그램이 몇 년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꿈은 우상이 되는 것이고, 우상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상에게 자신의 마음을 팔아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어떤 사람은 성공을, 어떤 사람은 쾌락을, 어떤 사람은 미모와 건강을 우상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아론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금송아지를 섬겼듯이, 믿음이 있다는 사람들도 교회 안에서 예배 드리면서 우상을 섬깁니다. 지금 이 순간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 중에도 품 속에 금송아지 한 마리쯤 안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우상 숭배의 결과는 타락과 방종입니다. 그것은 절대불변의 공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십계명의 Number Two로 정하신 것입니다. 그 공식이 이스라엘 백성의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이 공식은 그대로 통하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보고 읽는 뉴스에서 우리는 우상 숭배의 결과로 빚어진 타락과 방종을 확인합니다. 우상 숭배의 핵심은 "좋은 것이 좋다"는 철학입니다. 자신의 쾌락을 증가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는 것이 우상 숭배의 배후에 숨겨진 은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Live and Let Live!"라는 말이 현대인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 각기 자기 좋을대로 살자는 뜻입니다. 그 결과로 인해 진리는 부정 당하고 도덕률은 빈정거림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서 당신의 백성을 불러 내십니다. '교회'를 뜻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 (ekklesia)는 '밖으로'라는 뜻의 ek와 '부르다'라는 뜻의 kaleo가 합하여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교회는 바깥으로 불러낸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우상 숭배와 그로 인해 빚어진 타락과 방종의 세상에서 불러 냄을 받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설 곳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세상을 위해 중보하고,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선 자리는 어디입니까? 우상 숭배와 그로 인한 타락과 방종의 세상에 그대로 머물러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배의 자리에 나와 있지만, 품 속에 있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도록 부름 받았음을 망각하고 자기 좋을 대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다른 사람은 어찌 되었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에 팔려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오늘 교회 설립 63주년을 기념하는 이 예배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 아래에서 벌였던 광란의 축제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 설립 63주년을 맞으면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우리 각자를 위해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와싱톤한인교회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모세가 선 자리에 우리도 서도록! 모세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머물러 있기를 사모하게 되기를! 모세처럼 늘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를! 그리고 하나님께 얻은 거룩의 능력으로 세상 안에 들어가 하나님에 대해 증언할 수 있기를! 이 세상의 죄를 품어 안고 하나님께 중보하며, 하나님의 뜻을 품고 세상에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기를! 우상 숭배가 만연한 세상에서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며, 타락과 방종이 자랑이 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기를!
부디, 주님께서 이 소원을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 위에 이루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
63년동안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이 역사 속에 기도와 땀을 더한 이들을 기억합니다.
하늘의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지금 이 역사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모세처럼
주님 앞에서 세상을 중보하고
세상 앞에서 주님을 증언하는
제사장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상 숭배의 세상에서 주님만을 온전히 섬기고
타락과 방종의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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