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퍼붓는 기도
시편에는 원수에게 저주를 퍼붓는 탄원시가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시인은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시 69:22-23). 아주 악의적이고 파괴적인 분노가 가득한 것 같습니다. 시인의 저주는 점점 극에 달합니다.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시 69:27-28).
시인은 악인들이 회개의 은혜를 입지 못하고 계속 죄 속에 살다가 망하도록 내버려두라고 간구합니다.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고 확실히 망하게 해달라는 거지요. 악인에 향한 저주가 절정에 이릅니다. 참으로 끔직한 저주지요. 그런데 이 말씀을 읽으며 속이 후련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를 가장 열불 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하고 거짓과 불의를 행함으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에 큰 피해를 입힌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까지 받으면 우리는 완전히 돌아버리지요.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은 마음은 솔직한 우리 내면의 소리입니다. 그런 마음을 느낀다면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잘 아십니다. 그것을 억누르고 포장하느니보다 하나님께 정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낫습니다. 자신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계속 억누를 때 우리는 영적으로 더 피폐해집니다. 그런 분노와 미움을 사람들에게 쏟아내면 화를 좌초하지만 하나님께 그것을 토해내면 힐링을 체험합니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이 우리의 아프고 쓰린 마음을 어루만져 치유하고 싸매십니다.
시편은 불의를 당하는 이가 겪는 원통함과 분함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이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 없이 잠잠하고 용서하라는 상투적인 말을 툭툭 던지는 것만큼 인간을 아무 감정 없는 머신이나 무골위인으로 취급하는 매정함은 없습니다. 시편은 아프고 상한 심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위로와 치유함을 받는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기도가 새로워지게 합니다. 우리의 저주가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심의 표출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불의에 대해 분노하며 그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기를 탄원하는 차원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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