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영돈목사

성령과 함께 걷는 한 해 / 박영돈교수

새벽지기1 2016. 5. 20. 08:17


성령과 함께 걷는 한 해

 

요즘 내비게이션이 얼마나 발전되었는지요. 지난 주에 기도원을 찾아가는데 산골에 아주 좁은 길을 가는데도 내비 아가씨가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다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더군요. 그것을 어떻게 그리 정확히 아는지 참 신기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길 찾는데 염려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비도 간혹 먹통이 되고 헷갈려 계속 헤매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내비와 같이 실수가 없이 우리를 인도하시니 그 분과 함께 이 한해를 출발하면 안전한 여행이 될 것입니다.


물론 내비처럼 성령님이 우리 앞에 닥칠 일들, 어려움과 장벽을 일일이 알려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미래를 점쟁이처럼 미리 알려고 하지 마세요. 만약 그런 식으로 알려준다면 그것은 성령이 아니고 잡신이거나 미혹의 영일 것입니다. 미래는 모르는 것이 축복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라는 복음송의 가사처럼 살아야지요. 우리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그 미래가 선하신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압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이 합력하여 우리를 위해 선을 이루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식은 매사에 시시콜콜 간섭하시는 것이 아니라 굵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우리를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행할 바를 알게 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십니다. 말씀이 우리 발의 등불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목표를 제시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자유의 영입니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성령은 자유함 가운데 방종하지 않도록 우리의 책임을 일깨워주시고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이 우리 심령 속에 내주하심으로 시시로 우리를 교훈하십니다. 우리 심령과 양심을 통해 이렇게 살아라, 이런 사람이 되어라하고 속삭이십니다. 이런 성령의 음성을 계속 무시하고 살면 영적인 감각이 무뎌집니다. 신앙양심이 굳어집니다. 그러면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자신을 불태우는 열심이 있어도 그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은 파산하였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양심에 예민한 센서를 달아놓으신 것 같습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삶을 살 때 센서가 작동합니다. 우리를 저지하시는 성령의 부드럽고 세밀한 동작이 있습니다. 내비가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다고 알려주듯이 우리가 육신의 소욕과 열심을 따라 정신없이 질주할 때 우리를 저지하는 경고의 음성이 들립니다. 속도를 늦추라, 멈추라고 부드럽게 우리의 마음을 압박하십니다. 말과 행동이 너무 성급하다. 한 템포 늦추라. 말하기를 더디 하고 화내는 것을 더디 하라. 분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한다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성령의 리드를 차분히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열심에 사로잡혀 항상 성령보다 앞서 가는 거지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회막 위에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힘든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급증과 혈기의 열심과 성취지향적인 성향 때문에 기다리지 못해 항상 일을 그르칩니다. 가정과 교회의 문제가 어디서 터지는가요. 성령의 세심한 인도하심을 무시하고 살기 때문이지요. 바울사도가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했는데(갈 5:16), 그것은 성령과 함께 걸으라. 성령과 한 걸음, 한 걸음 보조를 맞추라는 말씀입니다. 올해도 성령님과의 아름다운 동행이 있기를 소원합니다(주일 설교 중에서)